슬로베니아: 체리 밭에서 포도원까지
- 파란 하늘과 신선한 공기. 보리수, 무화과, 사과, 배, 오렌지자스민 등 지나는 과수원에 따라 공기 중의 꽃과 열매향기도 달라진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7-31 09:46:53
[글/장루스]슬로베니아어로 수도 류블랴나(Ljubljana)는 ‘사랑 받다’라는 뜻이다. 솔직하고 강렬한 이름이지만 안타깝게도 강한 유럽도시들의 틈바구니에서 류블랴나는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큰 기대가 없어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더 큰 놀라움과 기쁨을 느낀다.
운하가 가로지르는 시 중심은 차량운행이 금지되어 있어 세 개의 돌다리로 오르내려 분위기가 한가롭다. 여름이 오면 도시는 거리에 앉아 바람을 쐬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여행객들로 서서히 붐빈다. 다리 가로는 매일 장터가 개장하는데 마침 체리와 은행이 제철이라 아침저녁으로 향기가 진동한다. ‘제화공거리’로 돌아 들어서면 이어지는 작은 수제화점과 낙서들이 광장보다 훨씬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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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昆明)에서 학교를 다닌 슬로베니아여인 Mateja에 따르면, 슬로베니아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류블랴나 시내 거리의 이름은 모두 이웃나라의 이름을 따 붙여졌다 한다. 예를 들어 ‘비엔나로’는 오스트리아로, ‘트리에스테로’는 이탈리아로 통한다.
류블랴나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몰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율리안알프스산에 도착한다. 슬로베니아에는 남부연해지역의 ‘아지중해기후’, 중부내륙지역의 ‘대륙성기후’, 북부 고 해발지역의 ‘알프스산지기후’의 세 기후가 나타난다. 산들에 둘려 고요한 보히니(Bohinj)호수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빙하호로 평지의 높이가 해발 500여 미터 밖에 되지 않고 기후는 시원하니 알맞다. 6월 초 호수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수영을 하고 풀밭에서 비키니를 입고 썬텐을 하는 등 여름경치가 펼쳐진다.
슬로베니아어로 ‘보(Boh)’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땅을 나누는데 말 없고 소극적인 사람들을 잊고 있다가 땅을 다 나눠준 후에야 생각나서 이 겸손한 사람들에게 미안해 남겨두었던 가장 아름다운 땅을 그들에게 준 것에서 ‘보히니(Bohinj)’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풍경은 더 멋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수심 45미터로 슬로베니아 바다(32미터)보다 깊다고 한다. 호수변으로는 얕은 여울백사가 펼쳐진다. 햇볕 아래 호수 물은 아름다운 푸른색을 띄며 맑고 투명해 물 속에 헤엄치는 물고기와 원앙이 물을 주는 안투리움을 볼 수 있다.
호수변을 지나 ‘빌라 브래드(Villa Bled)’라는 별장에 도착하자 Mateja는 별장이 전(前)남슬라브 지도자 티토(TiTo)가 살던 집으로 생전에 여름마다 이 곳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호화별장호텔로 개조되었다.
해질 무렵 우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물이 조금 차긴 했지만 수영을 좀 하고나니 반질반질한 자갈과 물풀에 앉아 조용히 물에 잠겨도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묘한 명상감에 서서히 잠겨 들어갔다. 물가에 있던 소년 두 명이 나에게 “우리랑 대마초 한 대 피울래요?”라 물었다.
물 속에 있던 나는 시원한 물에 흥분되고 아름다운 환경이 만족스러워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음, 초대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너도 보다시피 이렇게 물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충분히 업 되어 있단다.”라고 대답했다.
마침 그날은 보히니 지역에서 1년에 한 번 열린다는 ‘들꽃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 현지 식물학자를 따라 호숫가의 산길을 걸으며 이름 모를 작지만 너무 아름다운 들꽃들을 맞춰 보았다. 라틴문화와 슬로베니아문화의 협공으로 야생화들의 어려운 영어이름은 모두 잊어버리고 ‘엘더플라워(Elder Flower)’라는 작고 하얀 수생 꽃 만 기억난다.
정교하고 가냘픈 새하얀 이 꽃은 가까이 가지 않아도 그 초연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엘더플라워는 시럽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북유럽에서 남유럽까지 매우 보편적이지만 그렇게 많이 나 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날 저녁 우리는 작은 마을 스렌드니아(Srednja)의 오래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주인 Slamar Branko는
‘천천히 먹는 습관을 되찾고 자연으로 돌아가는’것을 중요하게 여겨 매일 산에서 재료를 따온다고 했다. 접시 가를 수 놓은 엘더플라워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티토가 휴가를 보내던 브레드(Bled)마을에서 100년된 증기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한다. 알프스산이 점점 멀어지면서 아지중해식 식생과 건물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세시간을 달려 노바고리차에 도착했다. 기차역을 나서기도 전에 역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역에는 ‘변방 카페’라는 커피숍이 있었는데, Mateja가 나에게 “여기 이탈리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에요. 여기 커피가 이탈리아보가 싸거든요”라고 귀띔해주었다. 이탈리아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몸을 돌러 기차역 맞은편 유로파광장을 가리켰다.
건너가 보았더니 광장 중앙 원형표지판에 ‘구유고슬라비아’라 써 있고 다른 반쪽에는 ‘이탈리아’라 써 있었다—2004년 슬로베니아가 독립하기 전 이곳은 구유고슬라비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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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슬로베니아에도 없는 것이 없지만 남서부와 남부의 많은 주민들은 주말이면 차를 몰고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로 쇼핑을 간다. “중국사람 가계가 많고 옷도 싸고 예쁘기 때문이다.”우리는 차를 몰고 산을 올라가 1년에 한번 열리는 ‘산 오름 걷기축제’에 참가했다.
도보여행의 이름은 ‘이 체리나무에서 저 체리나무까지 걷기’였다. 축제는 매년 6월 상순에 열리며산 중턱의 작은 마을 도브로보(Dobrovo)에서 출발해 5개 마을과 무수히 많은 포도원을 지나는 총 12킬로미터의 여정이다. 이곳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체리산지이자 와인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고 걷는 것은 현지 주민들과 하나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스쳐 지나는 사람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가던 길을 간다. 여행 내내 필자의 슬로베니아 어휘도 계속 늘었다.35섭씨도의 더위에도 우리는 평지, 골짜기, 산언덕을 오르내리며 누볐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체리가 가득 열린 체리나무가 보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나무아래 모여 한 움큼씩 집어 나무 밑에 서서 먹거나 자루에 담아 걸어 다니며 먹는다.
여행 중에 가장 붐비고 장관인 곳은 도처에 널린 포도원이었다. 한 아저씨가 우리 옆으로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이 포도원에서 저 포도원까지 걷기’가 더 좋은데”라며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보리수, 무화과, 사과, 배, 오렌지자스민 등 지나는 과수원에 따라 공기 중의 꽃과 열매향기도 달라졌다. 뜨거운 태양도 그리 뜨겁게 느껴지지 않아 12킬로미터를 휴게소에서 쉰 10여분을 제외하고 3시간반 만에 주파했다.
휴게소에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체리가 한 접시씩 담겨있었다. 새빨간 것은 아직 덜 익은 것인데 귀에 걸어 귀걸이로 할 수 있다. Mateja 가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습관이라고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나도 따라서 체리귀걸이를 했다.
자연이 준 ‘귀걸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걷다가 목이 마르면 이 ‘귀걸이’를 빼서 먹어버리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짙은 붉은색이면서도 자주색을 악간 보랏빛이 도는 녀석이 제일 달다. 마을 주민들의 또 다른 습관은 체리를 독주에 담궈 ‘체리 리큐어’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 맛 보았는데 술 냄새가 너무 진해 거의 취할 뻔했다.
내 맞은편에는 한식구가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보니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라 아들들이 선물을 사 주었는데 선물을 도보여행 중의 포도원 한 곳에 두고 온 모양이다. “어떻게 찾는담!”
그녀 옆에 앉아있던 큰아들이 나에게 웃으며 말하길 어머니 생신인데 가족들을 모으더니 굳이 굳이 그 땡볕에 12킬로미터를 전부 같이 걸으셨단다. “그럼 우리는 선물을 숨길 수밖에 없어요. ‘이에는 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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