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춰린·챵바단쩡투덩자바(江措林·强巴丹增土登扎巴): 1990년대생 스님의 성장기 I
- 생불(活佛)은 어떻게 생불이 될까? 발견되어 문화를 배우고 밀교(密宗)를 공부하고 경전에 대해 토론하는 것까지…. 끊임 없는 수행과정에서 생불 자신의 진실된 체험과 심정은 어떨까?
- 진상욱 기자 amote521@gmail.com | 2015-11-11 09:41:01
기자/쉬톈(창두(昌都) 베이징(北京))
“린포체(仁波切/rin-po-che: 찰창의 종교적 수장)님, 어서오세요.”
거실 소파 앞 30세 초반의 장족(藏族)남자가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가슴 높이까지 들고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 앞에 버터차 한 잔을 올린다.
거실 밖 문간에는 물에 빠져 죽은 지 3일만에 찾은 두 아이의 시체가 놓여있다. 가족들이 물에 불은 시체 전신을 진흙으로 덮는다.
문간 옆 작은 방에는 스님 몇 명이 함 불경을 읽어 망령을 제도한다.
25세의 생불 쟝춰린(江措林)은 파와법(颇瓦法)을 위해 모셔온 스님이다. 파와법은 밀교 의궤(仪轨)의 하나로 사람이 죽으면 스님이 죽은 사람의 입에 환약 한 알을 넣고 파와경(颇瓦经)을 읽어 죽은 이를 위해 제도하며 극락왕생시킨다. 성공하면 죽은 사람의 정수리에 작은 구멍이 뚫린다.
모든 스님이 파와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밀교 의궤를 수련하려면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 밤새 잠을 자지 않고 파와경의 경문을 읽어 자신의 영혼을 신체·언어·문화 세 영역을 왔다갔다 계율을 지키며 수행해야 한다. 하룻밤에 수련이 되는 사람도 있고, 오랜 기간 연습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생불 쟝취린은 몇 년 전에 파와법 수련을 완료했다. 그는 계율을 지키며 하룻밤만에 수행하는 방법을 깨닫고 한 달만에 이를 굳히고 숙련했다.
자식을 잃은 이 가정은 수만 명의 신도가 모이는 절의 생불을 모셔 파와법을 하는 것이 아이를 가장 잘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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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생불 쟝춰린은 왕생경(往生经)을 읽은 후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서 있던 아이의 어머니는 너무 울어서 눈이 빨개진 채 침묵을 지켰다. 그녀 옆에는 오랜 시간 기다린 장족남녀 10여명이 양 손에 하다(哈达-비단 스카프)를 받쳐들고 서있다.
장족 남녀들이 쟝춰린을 향해 머리를 고개를 숙이고 머리 위로 하다를 들어 건넨 후 손을 내밀어 그들의 정수리에 대고 가지(加持-기도)를 한다.
活佛 차량행렬 차량의 엔진덮개마다 노랑색과 흰색의 하다가 여러 개 묶여있어 ‘井’자 모양의 배열을 보인다.
자신의 소속사원——타베트(西藏)자치구 창두(昌都)시 볜바(边坝)현 니무(尼木)향 주당사(周塘寺)로 돌아가는 길에 차량행렬이 길을 따라 끊임없이 멈춰 섰다. 조수석에 앉은 라마불교 거루파(格鲁派) 생불 쟝춰린이 창문을 내려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도들을 위해 가지를 행한다. 가장 많을 때는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천 명 가까운 신도들이 하다를 받쳐들고 향(乡)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
환생(转世)
1974년 3월 13일. 제7세活佛 쟝춰린과 64세 투덩거상(土登格桑)이 ‘반(反)혁명세력’으로 낙인 찍혀 입적한다.
생전에 이들은 티베트자치구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자치구 불교협회 부화장 및 전국 불교협회 상무이사로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박해를 받아 모든 직무를 정지당했다.
입적 전 그는 조카를 한번 보고 싶었다. 조카는 라싸(拉萨)시 인민의원 의사로 응급진료가 생겨 오지 못했다. 둘은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의 장례식 날 비가 많이 와 천장대(天葬台)가 완전히 씻겨져 버렸다고 전한다.
1979년 티베트자치구 당위원회가 중앙정부에 보고해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중앙정부의 동의로 그 해 5월 26일 티베트자치구 정치협상회의가 이를 위한 추도회를 열었다.
유언이 없었기에 다음 환생신동을 찾기란 거의 아무 단서도 없이 매우 어려웠다. 생불 쟝춰린의 본사(本寺) 창두시 볜바현 진링향 상주덕건영퇴강조림사(桑珠德乾永堆江措林寺)에서는 나이 든 스님들이 업무와 법사(法事)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동안 나이 든 스님들이 하나 둘 입적하고 환생신동을 찾을 가능성이 다시 한 번 재기되었다. 수소문 끝에 라싸시 철방사(哲蚌寺)의 고승 다더런칭궁부(大德仁青贡布) 린포체를 알게 되었다. 사원에서 라싸로 사람을 파견해 환생한 생불 쟝춰린 찾는 것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생불 쟝춰린은 인간세상에 환생한 용수보살(龙树菩萨)로 여겨진다. 용수보살은 많은 사람들이 석가모니 이후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해설가라 생각하는 인물로 그의 저서 <중관(中观)>은 후손들에 의해 해석, 발전되며 대승불교의 중요한 토론주제를 이루고 있다.
생불 쟝춰린의 역사적 위치 때문에 런칭궁 부린포체는 그를 돕고 싶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그는밀교 의궤를 통해 점 궤를 본 후 사원사람에게 환생한 생불 쟝춰린이 7대생불 쟝춰린 집안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7대생불 쟝춰린 투덩거상의 조카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마침 임신 중이었고 아이가 모든 징조와 맞아떨어져 틀림없는 8대생불 쟝춰린이었다.
사원사람은 라싸시의 또 다른 고승 다더(大德)를 찾아가 점 궤를 보았는데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1990년 2월 14일, 태어나기 전부터 특별한 신분과 기대를 부여받은 아이가 라싸에 태어났다.
<중국신문주간(中国新闻周刊)>과의 인터뷰에서 8대생불 쟝춰린은 자신이 태어날 때의 장면을 아직까지 기억한다며 “갑자기 자아인식이 생기고 주변이 칠흑같이 어둡게 느껴졌어요. 여기가 어디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빛이 비추더니 어떤 노인의 손에 전해졌어요.”라고 말했다. 훗날 그 노인이 그의 외할아버지였음을 알았다. 7대생불 쟝춰린이 입적 전에 보고 싶어 하던 그 조카이다.
3~4살 아이 때 외할아버지와 함께 노블랑카궁전을 지나던 8대생불 쟝춰린은 외할아버지에게 전생에 자신이 살던 곳이라 말했고 가족들은 아이의 신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볜바에 생불 쟝춰린이라 자칭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안전을 위해 사원은정부관계자를 청해 런칭공부 린포체와 함께 보병(宝瓶)제비뽑기 의식을 거행했다.
두 사람의 속명(俗名)을 제비 두 개를 보병에 넣고 점을 친 수 보병에서 나오는 이름이 생불 쟝춰린인 것이다.
아이의 속명이 나왔다.
런칭공부 린포체가 아이에게 ‘쟝춰린·챵바단쩡투덩자바(江措林·强巴丹增土登扎巴)’라는 법명을 주었다.
그 후 외할머니가 아이를 대리고 런칭공부린포체를 찾아가 ‘그루(上师-스승)’로 모셨다. 그루는 건강이 좋지 않아 라싸시의 작은 지역에서 요양중이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외할머니는 아이가 울며 보챌까 입에 사탕을 하나 물려주었다.
아이는 예를 갖추고 보좌에 앉아있는 그루를 알현했다. 그루는 아이를 보좌에 앉고 차를 한 잔 주었다. 4살 난 아이는 낯설어하지 않고 눈 앞의 그루가 아는 사람인 듯 느껴 울며 보채지도 않고 보좌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셨다.
이후 생불 쟝춰린은 자신이 전생에 철방사 대전의 생불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정치적, 불도적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루 런칭공부와 친해졌다.
쟝춰린사의 스님과 신도들은 생불 쟝춰린이 환생했으며 라싸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알리며 라싸에 오면 일부러 그의 집으로 인사드리러 가기도 했다.
생불은 자신의 시종이 있어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곁에서 일상생활을 돌본다. 쟝춰린사 역시사원의 젊은 남자 한 명을 라싸로 보내 생불 쟝춰린을 돌보도록 결정했다.
런칭공부 그루는 사원에서 불경을 가장 잘 암송하는 젊은이 열명을 추천해달라 요구하면서 생불 쟝춰린이 말띠니 시종으로는 용띠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19세의 단쩡뤄상(旦增洛桑)은 용띠로 10명의 후보에 들었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날 저녁 그는 봉황 한 마리가 자신의 왼쪽 어깨에 날아와 앉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봉황이 틀림없이 생불이며 자신이 생불의 시종으로 뽑힐 것이라 말했다.
다음날 런칭공부 그루의 점 궤를 거쳐 단쩡뤄상은 정말로 조건에 맞는 시종이 되어 쟝춰린사에서 라싸에 도착할 때까지 생불 쟝춰린 곁에 동행했다.
생불 쟝춰린의 가족들은 아이를 유학 보내 전통교육을 먼저 받게 한 후 사원으로 들여보내기로 결정했다.
어린 시절
5세의 생불 쟝춰린은 이웃의 목탁소리에 짜증이 났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연휴에도 그는 새벽에 일어나 특별히 제작한 승복을 입고 집의 소불당에 좌선하고 앉아 불경을 읽어야 했다.
불당에는 탕카와 호법신 탕카 몇 점이 결려있고, 근처 불단에는 석가모니, 문수보살, 금강수보살, 보현보살의 불상을 모셨다.
그는 다시 집중해 눈 앞의 <문수예찬(文殊礼赞)>을 읽으려 애써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읽고 또 읽어도 같은 부분에서 막혀 처음부터 다시 읽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옆에 함께 외할아버지와 시종이 그가 짜증을 내는 것을 보고는 외할아버지가 몇마디 주의를 주었음에도 생불 쟝춰린은 피곤하고 답답하고 불경 읽는 것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를 끔찍이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다가와 두꺼운 <문수예찬>으로 그의 머리를 때렸다.
처음으로 맞는지라 그는 맞고 나서 크게 울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후회도 되고 마음도 아파 그를 안아 달랬다.
그 해 초등학교 1학년이던 생불 쟝춰린은 다른 친구들은 숙제만 끝내면 나가서 놀 수 있는데 자신은 왜 항상 불당에서 불경을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는 시종에게 불평을 했다. 19세인 시종은 매우 성숙해서 타이르며 말했다. “린포체, 생불님은 제정신적 지주이자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 멘토에요. 불경을 읽는 데 막힘이 있어서는 안 되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불님이 맞게 읽기를 요구하니까요.
이 말은 다섯 살 생불 쟝춰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그 한마디를 한 자 한 자 되뇌었다.
그때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없으니 아예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생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호칭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대충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살생을 하지 않는 등 타고난 생불인 듯하다.
집 입구에 있는 작은 소나무에 거미줄이 있었다. 파리 한 마리가 걸려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데 거미가 다가왔다. 생불 쟝춰린은 잠시 지켜보며 파리를 구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했다. 파리를 구해주면 거미의 먹이를 빼앗는 것이고, 구해주지 않으면 파리가 죽는 것이다.
그는 칼로 거미줄 일부를 끊어 파리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가 땅에 죽어있는 파리를 찾아 집어서는 거미줄에 살살 던져주었다. 이것이 일종의 균형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 어른들은 그의 속명을 직접 불렀는데, 5살 이후부터 ‘린포체’라는 존칭으로 그를 불렀다. 가족들은 더다고승의 전기를 통해 수행자가 어떻게 유혹과 장애를 대해야 할지 가르쳤다. 사람들도 그에게 생불의 기준을 제시하며 생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외할머니는 챵어바(强俄巴)라는 가문으로 가샤(噶厦-옛 티베트 지방정부)시기의 귀족이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티베트 최초의 수력발전소를 설계하고 세운 챵어바·런쩡뚜오지(强俄巴·仁增多吉)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좋은 교육을 받아 경어가 있는 순수 라싸어를 구사할 줄 안다. 생불이 정통 라싸를 구사할 줄 알면 더 존경받기에 생불 쟝춰린은 어릴 때부터 언사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는 항상 민머리로 6개월에 한 번씩 이발을 했다. 가족들은 그가 속세에 매일까 친구를 사귀지 못하게 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고 2~3시간 동안 좌선하고 앉아 불경을 읽어야 했다. 그 역시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공부를 하고 8시에 보통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는 것에 익숙했다.
그는 매주 2~3번 런칭공부 그루를 찾아가 ‘의문(依文)’, ‘6자진언(六字真言)’, ‘도모심주(度母心咒)’,’대비주(大悲咒)’를 공부했다. 짐에 돌아와 좌선을 하면서 한번씩 읽었다. 그가 6살 되던 해에 런칭공부 그루가 입적하면서 소소사(小昭寺)의 궁상린포체(贡桑仁波切)를 그의 두 번째 그루로 맞았다.
놀고 싶은 아이에게 좌선과 불경읽기는 고역이다. 그루가 가부좌를 가르쳐 주었다. 두 다리를 틀고 상체를 곧게 세운 채 눈을 감고 참선을 하는 자세인데, 그는 다리를 튼 지 얼마 못가 불편함을 느껴 처음에는 10분밖에 앉아 있지 못했다. 생불은 가부좌로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이야기에 그는 열심히 노력해 두 시간을 버텼다.
8살 되던 해 그루가 관상(观想)을 가르쳐 주었다. 가부좌를 틀고 방석에 앉아 두 손을 합장하고 의식에서 자기 앞의 구름층에 보좌가 있고 그 위에 단정하게 앉은 자신의 그루 주위로 열 개의 유명보살과 많은 호법신이 모여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위에도 모든 정욕적인 중생들이 단정하게 앉아 모두가 그를 중심으로 그를 따라 귀의문(皈依文)을 읽는다. 그루는 불경을 읽는 방법은 대승불도의 귀의발심(皈依发心)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생들에게 유익하다 알려주었다.
그는 티베트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자신이 읽는 불경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생(众生)’이 무엇인지 아직 다는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공덕이라는 덕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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