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영화 스틸 컷, 훔쳐온 인생

남자는 자리에 누워 건들건들하며 가족들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농담을 한다.
아, 이것이 어쩌면 가정의 근간이거나 훔쳐 온 인생의 비밀인지도 모른다.
김지영 bnu0827@gmail.com | 2018-09-10 09: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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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글/ 양스양(杨时旸)] 어떤 영화는 자연스럽게 다각도로 논평을 하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이에 대한 논평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반복적으로 재생해 보게 되고 매번 볼 때마다 새롭고 기존에 볼 때와 다른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후자에 속하는 영화이다. 어찌 보면 히로카즈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후자에 속한다. 이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로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고 결국 한번 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가족’은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영화라고 평가하고 어떤 이들은 차갑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또 다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다 그릇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로카즈 감독은 이 이야기에 어떠한 태도나 삼관(三觀,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인위적으로 어떤 색채나 분위기를 가미시키지 않았다. 감독은 일종의 ‘진실’과 가능성을 추가하여 생활 속에서 일어날 법한 모습들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생활 자체를 어찌 철저하게 냉수인지 온수인지 분별할 수 있을까. 즐거움도 있고 걱정도 있으며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는 그 물을 마신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혈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와 가정을 이루어 자석과도 같이 뭉쳐 정신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각자 어두운 직업을 갖고 있으며 훔쳐 온 음식을 먹고, 훔친 샴푸를 사용하며 입씨름을 하면서도 서로 의지하면서 지낸다. 방관자의 시각에서 이들을 살펴보면 그냥 한 가족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히로카즈 감독 작품의 인물 관계는 ‘정상’적인 편이다. 자매나 부모자식 간은 물론이고 가족끼리 조용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지만 ‘어느 가족’은 겉으로 보기엔 기존 작품과 같은 모습과 인물 관계처럼 보이지만 정신적인 괴리를 드러냈다. 가족구성원들의 관계는 희극적인 요소를 띄면서도 사리사욕이 없는 모습이며 느슨해 보이지만 단단한 모습으로 풀어냈다. 할머니는 한편으로 혈연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사이라고 탄식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가족’끼리 해변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과연 가정의 의미와 근간을 이루는 결정적인 근거는 무엇일까? 이 의혹은 줄곧 이야기의 진전 과정 중에 나타나고 있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어느 가족’에는 고층 건물이 없는 밝은 배경이 주를 이루고 몇 명의 사람들이 좁은 집에 모여 살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겨울에는 눈을 밟고 여름에는 파도를 밟으며 살고 있다. 따스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들은 서로의 눈빛이 마주치면 웃고 서로 기대고 있었다. 삶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지만 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감동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조교제 손님의 포옹과 눈물, 남자가 아이에게 자신을 아빠라 불러달라고 하는 모습, 한 가족이 처마 밑에서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얼음에 융합된 불과도 같다. 작은 섬 하나하나를 이으면 대륙이 되는 것일까? 이들은 정말로 이를 연결해놓은 것 같았다. 마치 한 물방울과 다른 물방울이 부딪치는 순간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것과도 같았다. 이 가족이 그 소녀를 집에 데려 오는 순간이 바로 물방울과 물방울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그 전에도 가족들은 이렇게 융합이 되어 갔다.

 

 

이 집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의 전 남편은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전 남편이 죽은 후 할머니는 항상 시간을 맞춰 전 남편이 새로 꾸린 집으로 찾아가 조문을 하며 길가다가 들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방 자녀들이 이를 가엾이 여겨 주머니를 털어 돈을 주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잘 받아 챙겨두었다. 여인은 세탁소에서 손님들의 호주머니를 털었으며 남자는 도둑 가족이라는 상황을 숨기기 위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이 집에는 원조교제를 하는 여동생과 소매치기를 해서 살아가는 아이도 있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분을 숨기고 있었으며 서로에게만 마음을 터놓았다. 이 가족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진솔한 사랑을 주고 있었다. 여자는 여자아이를 안고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원망이며 무엇이 기만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 순간 혈연은 그렇게 의미가 없는 것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믿음과 독특한 가족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어떤 것에 기반해 이루어진 것인가? 사랑인가? 아니면 서로가 도둑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협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가? 서로의 믿음인가 아니면 서로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인가?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생활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도둑 가족의 일상 생활은 완전히 정상적인 세상 밖으로 차단되었다. 하지만 이른바 정상적인 세상이란 진정으로 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제대로 된 정상적인 세상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또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 버림받았는가? 하지만 ‘어느 가족’에는 사회비판적인 부분이 없다. 영화는 현대 사회의 이질화,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과 야박하게 변해가고 있는 세태에 착안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삭막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만 탐구하고 있다.  

 

남자는 자리에 누워 건들건들하며 가족들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농담을 한다. 아, 이것이 어쩌면 가정의 근간이거나 훔쳐 온 삶의 비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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