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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전통 증기기관차. 열차장은 승무원의 옷차림을 검사한다. |
에밀리의 침실은 2층으로 싱글침대 하나와 서랍장, 의자 하나로 가득 찰 만큼 아주 아주 작다. 아방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서재로 쓰이다 에밀리가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녀의 방으로 꾸몄다.
1847년 에밀리는 29세의 나이로 <폭품의 언덕>을 발표했다. 같은 해 샤를로트가 발표한 <제인에어>가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에밀리의 소석 역시 관심을 모았다. 세 자매는 전에도 형제 브랜웰의 이름으로 시집을 공통출판 한 적이 있어 사람들은 <폭풍의 언덕>의 저자 역시 사를로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사를로트가 두 자매와 함께 런던을 방문해 두 자매를 소개한 후에야 사람들은 <폭풍의 언덕>의 진짜 작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문학사상 가장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녀의 작품도 당시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사람들은 소설을 기이하고 어려우며 전혀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책에 묘사된 잔혹하고 야만적인 사랑 역시 충격이었다. 평론가들은 혹독한 말로 작가 에밀리를 비판했지만 소설의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갔다.
1848년 브랜웰이 알코올중독과 마약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밀리는 그의 장례식에서 감기가 걸린 후 폐결핵으로 전이되었다. 그녀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3개월 후 자택 거실 소파 위에서 영원히 눈을 감았다. 겨우 30의 나이었다.
에밀리가 평생 발표한 소설은 <폭풍의 언덕>뿐이지만 시는 193편에 달한다. 언제나 혼자 뿐인 황원을 거닐며 평생을 진정한 사랑한 번 해보지 못하고 가족 외에는 친구도 없던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야만적이고 괴팍한 사랑이야기를 썼는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자신의 시에 쓴 것처럼 죽음은 사실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결말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를 향한 내 젊은 영혼의 갈망하는 것을 금했다.
나는 쓸모 없는 감격으로 맺히는 눈물을 억눌렀다.
나는 너의 무덤을 향한 나의 불 같은 열망을 엄격히 거절했다——
내 것보다 더욱 내 것 같은 너의 무덤이여.
그럼에도 나는 영혼의 고뇌를 두고 볼 수 없고,
추억의 아픔과 기쁨에 연연할 수 없다;
그 가장 신성한 아픔에 잠기면
이 공허한 세상을 어찌 또 찾을 수 있으리?
생가를 떠나며 나는 브론테 가족의 묘를 찾아 에밀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마음으로 ’당신 고향이 참 좋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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