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페달 밟는 청두 문화산업
- 청두는 천 년간 중국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도시다. 따뜻하고 소박한 생활방식이 문화적으로 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더 많은 예술가와 혁신가들이 모여서 청두의 문화와 산업 그리고 이 도시의 기억과 유산, 더 나아가서는 도시의 혁신과 미래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다.
- 민결본 news@inewschina.co.kr | 2015-02-03 19: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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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두(成都) 세기성(世纪城)뉴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비엔날레’ 전람회 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금속조각상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CFP © 중국신문주간 |
[중국신문주간 민결본 기자] 독일 총리 메르켈은 2014 년 7 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먼저 청두를 그 첫 번째 방문 도시로 선택하였다. 메르켈은 중, 독 도시화포럼에 참석하는 것과 폭스바겐 청두지사를 참관하는 것 이외에 직접 농업시장으로 장 보러 갔고 그곳에서 궁바오지딩의 요리법을 배웠다.
최근 청두는 외국지도자가 자주 방문하는 지역이 되었다. 영국 수상 캐머런, 미국 부 대통령 바이든, 미국 영부인 미셸,캐나다 총독 데이비드 존스턴, 호주 총독 브라이스 등의 정계 요인들을 끌어올 수 있었던 매력은 청두가 점차 서부경제의 교두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청두에서 우리는 중국 서부 시장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신미래’를 엿볼 수도 있다.
‘신미래’를 열기 위해서 청두는 ‘창의적 문화사업’ 을 지렛대로 삼아 미래지식경제의 핵심적인 동력을 찾아냈다. 난딩예술기지(基地) 홍싱로 35호 광고창의산업원, 동교기억산업원, 동촌문화산업기구 등 창의적 문화사업 은 점차 늘어났다.
2012 년, 청두시 문화산업법인 단위 사업장 증가치가 403.95억 위안을 달성하였다. 이는 청두시 GDP의 4.96%에 해당한다. 문화산업은 도시 중점 산업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게 되었다. 청두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도시로서 토속 문화를 세계로 확산하기 위해 청두는 2014년 9월14일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 본부에서 풍부한 문화 및 과학기술, 무역, 금융을 전시하였고 고대부터 현재까지 청두가 중요한 대외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보여주었다.
청두는 천 년간 중국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도시다. 따뜻하고 소박한 생활방식이 문화적으로 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더 많은 예술가와 혁신가들이 모여서 청두의 문화와 산업 그리고 이 도시의 기억과 유산, 더 나아가서는 도시의 혁신과 미래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다.
청두, 현대예술 아트스트 지배하다
“청두는 예술의 복지이다.”
청두 본토예술가, ‘상흔미학(伤痕美学)’ 대표인물 청총린(程丛林)에 따르면, 청두는 동, 남, 서, 북에 각각의 지역에 예술가 군락이 있다. 당시 저우춘야(周春芽),궈웨이(郭伟),짜오넝쯔(赵能智),양맨(杨冕)은 청두공항의 빈 공장을 임대하였다. ‘난딩(兰亭)’ ‘농원’ ‘서촌’ ‘북촌’ 등을 거느린 청두는 베이징, 상하이 뒤를 잇는 제3의 예술 성(省)이 되었다. 청두는 베이징과 상하이와 다르게 예술가들이 취미삼아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 문화’가 정부의 조정 계획과 맞물려 창의적인 청두 문화산업 발전의 새로운 루트가 되었다.
전국 중요 예술 군락 중 하나인 ‘난딩예술중심’은 현재 이미 청두 현대예술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접근법에 대한 결과물이자 성과였다.
그 당시 예술가 주촌아, 곽위, 조능지, 양 면 네 명이 청두공항 옆에 있는 버려진 공장을 빌려서 자신들의 작업실로 만들었다. 공장의 천장이 파란색이어서 ‘난딩’ 이라고 이름 지었다.
난딩의 영향력은 점차 확산되어 백 명의 예술가들이 여기에 모이게 되자 일약 중국의 유명한 현대예술 군락이 되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장소문제 등의 한계로 인하여 난딩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청두시가 구축한 삼성향의 ‘다섯 송이 금화’ 관광 지역이 초기 모습을 형성하게 되면서 전원경치 품은 개방형 정원으로 탈바꿈하는 시기에 난딩예술가들을 이곳으로 초청 거주하도록 함으로써 영원한 예술 서식지로 만들었다. 또한 예술산업망의 새로운 형태를 이용하여 현지 주산업인 농업경제 형태를 다시 수정하게 만들었다. 이 정책은 청두 문화산업 발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예술기지 1 기인 ‘난딩예술중심’ 을 세우게 되었다. 14 채의 서로 다른 다양한 작업실을 관광객에게 보여주었고 주춘아, 하다영 등 총 14 명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곳에 정착하였다.
현재 30 만평 토지를 차지하고 있는 제2기 프로그램을 이미 시작하였으며 청두의 진장(锦江),쌍류, 용천 등 세 군데가 서로 연결된 지역에 위치하여 주변에 세 지역에 둘러 쌓여있다. 이 동네 안에는 공공 예술기구, 미술관, 예술센터, 소유권 작업실과 임대식 작업실 이외에 조각, 촬영, 애니메이션 등 이와 관련된 파생 업종기지를 포함하고 있다. 완성 후 여기에는 다양한 예술 촌락이 서로 연결하는 구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1 등급 도시에는 예술자본과 창조환경의 등의 악화로예술구역의 기능성 변질과 예술 인재의 유출 등 문제가 발생할 때 청두의 ‘난딩’은 예술가에게 무릉도원과 같은 정신적인 고향의 편안함을 제공하였다.
쓰촨음악대학교 청두 미술학원을 졸업한 뢰교무 씨를 난딩에서 만났다.
뢰교무 씨는 청두 미술학원을 졸업한 후 전업작가로서 꾸준히 작업하여 돈을 버는 경로가 아직 없었다. 그 어려운 시절에 형이 주는 600 위안으로 생활하였고, 월세를 절약하기 위하여 거의 매년 한번씩 이사하였다. 가장 힘든 시절은 월세가 50 위안인 폐쇄된 공장에서 살 때였다.
뢰교무 씨는 5 년 동안 작품을 한 장도 팔아본 적이 없어서 돈을 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난딩에 이사한 상황은 달라졌다. 2013 년 그는 광저우에서 열린 제 4 기 신성성 예술절 신인상을 받았고 인기가 있고 나서부터 그는 2013 년 연간 20 여점의 작품을 팔았으며 화랑에서 그와 직접 계약한 것도 있었다. 2014 년에 그는 <청두상보>의 ‘청년예술가 지원계획’에 당선되었으며 가장 잠재력이 있는 젊은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뢰교무 씨는 <중국신문주간>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살던 곳은 주변에 예술 분위기가 없어서 저 자신도 답답해지고 주위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하고 싶지 않았죠.”
난딩에서 그는 작업 분위기, 작업 환경, 자신감 등을 되찾았을 뿐 만 아니라 예술가에 맞는 주거지도 갖게 되었다.
난딩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 상인들의 눈길을 끄는 곳이 되었다. 난딩 예술관 관장은 “난딩은 영향력이 있는 전람회를 이미 수십 회 열었으며 월마다 예술 심사회가 있습니다.” 라고<중국신문주간>에게 말했다.
난딩은 지금 단순한 화가 촌락에서 현대예술을 말하는 창의적 산업구역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난딩 주변에는 액자 제조, 예술품 물류 배달, 예술 비즈니스, 예술 멤버스크럽 등 예술 관련 일거리와 사업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현지의 농민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적극 동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제는 난딩이 문화예술체험, 도시농업체험, 생태농업관광, 여행·레저 등 다양한 산업 기능을 종합적으로 만드는 예술단지을 형성하게 되었다.
“전진하면 천하(天下)가 될 수 있으며 후퇴하며 정원이 될 뿐이다. ” 어느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난딩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패러다임은 청두에서 커다란 힘으로 형성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독자적인 한 계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화가 주춘아는 난딩을 “예술단지와 도시 간의 공생관계”로 표현하였다. 난딩 미술관의 디자인너인 리우자쿤(刘家琨)은 “난딩은 이미 예술과 자연의 융화됨이 깊게 자리 잡았으며, 자연 생태 모습을 그대로 유지 보존하여 서로간의 영양을 흡수하고 상호간의 지속적인 상생적 순환을 형성할 수 있게끔 계속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중심의 화려한 경제 지역인 홍성로 1 단 35 호에 위치한 이 곳은 원래 청두 군사 구역 인쇄공장이었는데 날고 버려진 공장을 다시 고쳐 세우고 나서 이곳은 무에서 유가 되고, 와해되고 다시 재생되어진 독창적인 중국 서부의 첫 번째 창의적 문화산업 단지 ‘홍성로 35 호’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곳의 모습은90 도, 180 도, 270 도 등 각종 모양의 작은 건물을 쌓기 놀이처럼 서로 겹쳐서 얼기설기 얽혀 있는 ‘벌집’ 모양으로 매우 독창적이다.
이 단지에 들어선 기업들은 창의력을 핵심 경쟁력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다. 청두 뉴미디어 드라이버센터는 스마트 도시를 연구하는 벤처기업이다. 이 센터를 운영하는 판도라 과학기술회사의 왕청청 총경리는 뉴미디어의 혁신과 다양한 표현 방식을 이용하여 정부의 결단과 업무의 정보화, 도시 운영의 정보화, 기업관리의 정보화를 더 효율적으로 지지할 수 있었다고 <중국신문주간>에게 밝혔다. 현재 청두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3D지도, 전자 행정업무 시스템, 공안국 지휘시스템은 모두 이 센터의 혁신 연구기술이다.
예술품과 소장품, 문화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아도청심(雅道清心) 등 독창적인 기업들이 이곳의 분위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 기업의 총감독인 량표일은 “여기는 이미 창의적 문화 산업의 유기적 관계가 사슬처럼 형성 되어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인, 전시 등 모든 고리에 대하여 좋은 파트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공업디자인은 이 단지 안에 있는 핵심 산업이다. 로코코 디자인회사, 낭첨공업 디자인회사, 가란도 디자인회사, 애마 디자인회사 등 국내 일류한 디자인 회사들이 이 곳에 모여 있다.
2013 년 말까지 단지에 정착한 광고업 기업은 약 267개가 되었으며 광고, 디자인과 미디어, 인터넷, 디지털, 전자출판 및 광고거래 등 상 하류 산업이 서로 결합한 산업망을 구축하였다.
2012 년 7 월, 홍성로 35 호 창의적 광고 산업단지가 국가급 광고 산업의 시범 단지로 인정하여 국가 상공 행정 관리국과 재정부의 3000 만 위안의 재정보조금을 받았다. 중국 서부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창의적 산업 공업단지가 되었다.
처음에 여기는 청두 문화산업의 파격적인 시도였는데 현재 청두는 창의적 문화 산업의 달인인 최고 사령부와 문화산업의 아이디어 시장이 되었다. 미래 5 년 간 단지 내에 수천의 광고 기업 및 관련 기업이 모일 것이고 10 채의 광고 전문 빌딩을 건설하고 5000 명 이상의 광고 전문 인재를 키우고 10 만 명의 현지 노동인구를 창출하고 구역 광고 및 관련된 산업 경영 금액이 100 억 위안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홍성로 35호 이외에 더 많은 가능성과 다양한 형태를 지닌 문화산업단지, 기지, 기능구역이 청두에서 바람처럼 일어났다. 그 뒤에 문화와 과학기술 간이 서로 점차 융합돠어 청두 전자정보산업이 최근에 급속하게 발전한 것도 이 덕분이다.
‘동교기억’은 중국 이동무선 음악기지를 기초로 발전하여 디지털 음악, 인터넷 음악 산업을 핵심으로 다양한 소비 유형 산업을 한데 모으는 동시에 첨단 기술 산업과 문화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동교기억’ 문화와 과학기술이 서로 융합하는 시범단지를 구축한 것이다.
새로운 산업에 새로운 기후가 형성되고 있다
문화산업의 의미가 현재 중국 경제 구조를 조정하고 방식을 변화시키는 배경으로 역사상 아주 중요한 의미라는 것을 이미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 되었다. 중공 스빠따(18 大) 보고 상에 ‘문화산업의 쾌속발전을 추진하여 2020 년까지 문화산업은 국민경제주요산업이 되어야 한다’ 라고 제안하였다.
<청두시 문화산업 발전 125기획>에 ‘문화산업은 청두 산업 구조조정과 발전 방식 그리고 변화의 방향이 이 더 명확해질 것.’ 이라고 분석하였다.
미래 청두의 목표는 중국 중서부에 가장 영향력이 있고 전국에서 으뜸가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문화의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의 배경은 2015 년 문화산업 증가치가 700 억 위안을 넘고 전시 지역 GDP 의 비율 중 6%를 넘고 2020 년 문화산업 증가치가 전시 지역 GDP 의 비율 중 8%를 넘어 국민경제의 중견 산업이 된다는 것이다.
청두는 현재 중견기업들의 지원으로 미디어, 문화박람여행, 창의디자인, 연예오락, 문화 및 독창적 예술품, 애니메이션 게임과 출판 등의 산업이 쾌속 발전할 수 있는 단지나 빌딩 등 중대한 산업아이템과 문화 산업 형태가 이미 형성되었다.
체제 개혁의 속도 또한 가속도 붙고 있다. 수년간 청두가 문예원단을 조정 개혁하여 청두 예술 극장, 청두 박물관, 청두 연예집단을 만들었다. 동시에 자원통합을 중심으로 청두 문화여행 집단을 만들고 국유 문화집단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어 문화 여행업의 운영 관리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제약과 도전은 늘 함께 존재한다. 문화산업의 전체 수량이 크지 않고 전국에 영향력이 있는 중견 문화기업이 많지 않다. 창의적인 핵심 인재, 리더 등 문화산업의 복합형 인재가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다.
난딩예술센터 건립을 기획하는 과정 중에 정부는 역할과 범위에서 많은 칭찬을 받았다. 정부는 공동 토지의 무상공급을 통해서 예술지역 토지 사용과 인클로우저의 합법성을 보증하여 전국의 독창적인 예술가에게 영원히 의탁할 수 있는 작업실과 주거지역을 만들어 줌으로써 각 예술지역의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청두시 사회 과학원 부원장 진가택의 관점은 “난딩의 모델은 정부와 예술가, 예술산업 경영자 간에 상호적인 양성 작용의 패러다임이다”. 그는 창의적 문화산업단지를 창립하는 정부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야 된다. 정부는 난딩예술기구에게 좋은 정책을 제공하였다. 이는 정부가 제공한 것이 지휘와 결단만이 아니라 문화를 지탱할 수 있는 힘과 인도적 정책인 것이다.”
“많은 지역에서 문화 산업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방법을 모르고 있다. 어디로 접속해야 하는지 모른다.” 진가택은 <중국신문주간>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청두는 문화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고 잘 이끌어 가고 있다. 그는 “청두 제 2 산업인 IT,자동차 제조 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유치산업이고 그에서 얻어지는 이익의 공간은 아주 크다.”
그가 보기에 청두 문화 산업 발전의 가장 유리한 조건은 풍부한 자원이다. 이 자원들이 산업화가 되지 않으면 유휴 자원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진가택이 아주 적절한 비유로 설명했다. “아주 풍성한 식탁에 앉아서 손에 있는 젓가락이 어디로 내밀어야 하는지 모른다.”
“문화 산업은 의식형태 속성과 산업 속성을 갖고 있다. 이 두 속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또 그것을 유치산업화 하기 위해서는 예술가 재능 자원을 합리적으로 결합하여 문화산업 정책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라고 진가택이 말했다. 수년간, 청두가 전국의 많은 도시와 비슷하게 이 도로에서 탐색적으로 직진하고 있다.
정책의 지도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 청두시가 <청두시 문화 산업 발전 ‘125’ 계획>을 만들었고, 시단위급 문화산업전문자금을 설립하고 일련한 문화산업 지탱 정책을 발표하였다. 매년 시단위급 전문 자금의 투입은 2억 위안보다 적지 않도록 보장하였다.
청두로 말하면 중국의 가장 좋은 관광도시의 브랜드 이미지가 이미 펼쳐져 있다. 이보다 더 유명한 문화산업 브랜드를 만들고 도시 브랜드를 위해서 날개를 하나 더 다는 것은 청두의 다음 과제가 되었다.
“브랜드의 형성은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과정이다”고 진가택이 말했다, 이 과정에 많이 투입되는 것은 단지 돈만이 아니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예술가나 기업가들의 불굴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청두가 문화 산업의 다음 단계로 발전 진입하는 것에 대한 시간과 정신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하루 내에 완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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