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세인트루이스 예배당 전경 |
[중국신문주간 편집부] 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 레무스와 로물루스! 이태리의 건국 신화마냥 두 형제의 싸움은 동-서 로마로 갈라지면서 옛 로마제국의 영광은 끝났는가 보다. 기원후 5세기 동안의 로마제국은 이태리 반도를 중심으로 멀리 중동지방은 물론 영국까지 뻗쳐 있었다.
지금도 영국의 바쓰(Bath) 지방에는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유적지가 남아있다. 전성기에 만들어진 8만km의 도로는 오늘날, 유럽 간선도로의 기본이 되었다. 로마에 관한 서양 속담이 많은 것도 왕년의 영화 때문이리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등. 또한 세상의 질과 양에 대한 표준은 로마의 도량형 법이 기준이 되어 지금도 쓰고 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역사적인 로마 그리고 종점이자 출발점인 테르미니역에 도착하였다. 역이란 어디나 시작이자 끝이고, 끝이자 시작점이다. <로마의 휴일>로 이미 익숙한 듯한 오드리 헵번과 로마를 즐겨보는 것이다. 곁에는 한국판 오드리 헵번이 붙어있으니까 말이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이쁘다고 여자냐’하는 한국판 여자 말이다.
관광과 패션으로 먹고 사는 나라, 옛날의 영광을 팔아먹고 사는 추억의 나라, 집시와 소매치기의 나라, 마약과 마피아의 원조가 유명한 그리고 산 피에트로 검사가 공존하는 나라 그리고, 세계 각 나라 주교들을 호령하고 있는 현대판 신, 교황이 앉아있는 도시 속의 도시 바티칸이 있는 모순과 수수께끼의 나라에 그것도 밤에 도착하였다. 호기심이 가면서도 불안하다.
국제열차가 도착하자 많은 삐끼들이 몰려들었다. 그 많던 한국 젊은 배낭족들이 그 삐끼들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하룻밤’ 숙박을 흥정하느라 걸태질을 해댔다. 삐끼들은 신분증과 사진첩을 내밀고 우리에게도 다가왔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몰리는지, 그들 중에는 한국말로 “아주 싸요. 아저씨! 무지무지하게 싸요!”하면서 반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했으나, 나는 거절하고 로마 시내의 몇 개 대학 기숙사를 전화했으나, 역시 밤늦은 시간에 받아줄 리는 없다.
새로 도착하는 도시마다 배낭족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숙박문제다. 하루 저녁에 최하 5만 원 이상씩 하는 호텔에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싸구려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한다. 혹 가다 인심 좋은 할머니를 만나 민박 같은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복권 당첨 만나기보다 더 힘들다.
할 수 없이 역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황당하기만 한 로마의 달을 나침반 삼아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을 더듬었지만 ‘펜션’이라고 쓴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길 가는 아무나 잡고 물어보며 설사 이리저리 자발없이 떠들었다. 영어도 짧은데다가 고장 난 세탁기 통 돌아가는 소리 같은 이태리어는 더욱 멀기만 하다. 대충 감으로 때려잡고 그미의 손가락이 가리켰던 방향으로 찾아갔다.
밤은 더욱 옥죄어 들고 만나는 놈이 집시건 건달이건 간에 일단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여행 중에 만난 우리 용인대학 관광학과의 정태와 같이 밤거리를 누빌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키만 전봇대같이 길기만 했지 회화는 나보다 더 짧았다. 혹 떼려다 더 큰 혹만 붙인 꼴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펜션이란 간판이 무슨 우리네 여관 간판마냥 형광등으로 비치는 게 아니라, 명함만 하게 그것도 문패 앞에 보일 듯 말듯 붙여 놓았으니 알게 뭐람. 층계를 몇 바퀴 돌아서 올라가보니, 여학생 배낭족 몇 명이 우리마냥 파김치가 되어 접수대 앞 소파 벽에 ‘날 잡아잡슈’ 하고 기대어 있었다.
하루 저녁에 약 4만원, 만원을 더 보태면 호텔로 갈 수 있다. 아까, 역에서의 삐끼들 가운데는 1만 5천원짜리도 있었는데, 여기서도 혹 떼려다 혹 붙였구만. 그러나 어쩌랴, 두 배를 물고라도 들어갈 수밖에. 원래 바가지의 나라 이태리가 아닌가. 첫날부터 이태리의 진짜 맛을 보는구나. 암 늑대 같은 로마의 첫날밤이여.
![]() |
▲ © 로마 전경 |
기원후 75년 지구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동된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왕위에 오르면서부터다. 테베레 강변에 위치한 7개 언덕에 세워진 로마는 이후 약 5세기까지 전 유럽을 호령하다가 동서로 나뉘어지면서 쇠퇴를 하고 장화 같은 반도로 졸아들게 된 것이다. 졸아든 이후에도 통합과 분열이 반복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19세기 중엽에 가리발디에 의해서 재통일 되었으나, 90년대 들어 남북 이태리 주민들이 다시 격돌되어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폭군 네로를 상징하는 인간의 극단적인 독재와 사치는 멸망을 자초하는 길밖에 없다. 중국의 당 현종과 양귀비나 우리나라 백제 의자왕과 삼천 궁녀도 비슷한 맥락이다.
![]() |
▲ © 판테온(Pantheon)신전 |
이튿날 새벽부터 누볐다. 어젯밤 바가지 숙박비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로마의 껍데기를 샅샅이 벗기기 위해, 테르미니역에서부터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판테온(Pantheon)신전. 제목 그대로, 기원전 27년 올림푸스의 ‘모든 신’들을 모시기 위해 지었으며, 통일 이태리 왕국의 무덤들도 차례대로 누워있다. 원형으로 뚫려있는 천장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햇빛이 이동되는 것이 신비하다. 이것을 보고 미켈란젤로는 ‘천사가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햇볕이 뜨거워 판테온 현관 계단에 앉아 2천년 전, 고대의 햇빛과 시간을 수색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구혼 부부이신가 봐요?”유모차를 잡고 서있는 어느 젊은 신혼부부가 말했다. 우리는‘구혼’이란 말에 어색하기도 하고, 한국말에 반갑기도 해서 “예에, 안산에서 왔어요” 했더니 당시의 두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프랑스 동포인데 남편 따라 유학으로 왔다가 그냥 주저앉은 지 십 년이 넘었다고 했다.
이따금 고국소식이 그립다고 했다. 프랑스와 이태리는 이웃이라 자동차를 몰고 왔단다. 프-이 국경뿐이 아니라 전 유럽이 다가채기로 붙어있어서 유럽 사람들은 대개 차로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사실 그 편이 훨씬 편하고 경비도 적게 든단다. 한국의 세계화는 바로 이런 동포들이 전 세계에 뻗어있으므로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나보나 광장(Piazza Di Navona)의 조각분수는 베르니니가 4대강(나일강, 갠지스강, 도나우강, 라풀라타강)을 의인화한 것으로 트레비분수와 함께 로마를 상징하는 명물이다. 바로크양식의 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로마 시민들은 “아, 신이여! 이 돌들이 빵으로 바뀌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원하였다. 그것은 이 조각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먹는 빵에 세금을 메겨 갈취했기 때문이란다. 화려한 조각 뒤에는 어두운 아픔이 있었다.
동서고금의 초라떼 역사적 관광유물들은 그 고통이 대동소이하다. 그 문화재가 거대하고 거창할수록 그 뒤에 서린 서민들의 원한은 지금도 시퍼렇게 서려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 뒤에 숨은 진정한 역사성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혼인 23년 만에 신혼 같은 구혼여행의 행운을 노천카페에서 생맥주 잔으로 높이 헹가래를 쳤다. 큰 딸 년이 이제 대학 졸업반이니 정말 스무 새해가 되는가 보다. 아직도 가난은 때를 못 벗어서 마누라를 싸구려 펜션으로 끌고 다니는 신세이지만 그미는 그제나 이제나 맹목적으로 나를 믿고 따라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사실 우리는 23년 전, 신혼여행 때도 호텔이 아닌 여관에서 첫날 밤을 지새웠으며 그 흔한 비행기도 못 타보았다. 그래도 아직은 시퍼런 우리들의 두 다리가 있고 또 명색이 교수인 내가 그미를 한국판 오드리 헵번으로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역사적인 일이냐면서 우리들은 토론에 들어갔다.
분수 끝 포말들을 헤아리면서 생각한 것이 왜 베르니니는 세계 4대 강 문명 발상지에서 황하를 빼었느냐는 의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유럽 각급 학교에서의 역사 시간에는 유럽사만 배운다. 세계사 시간에도 그들은 유럽사가 전부이다. 금년에 세계 펜클럽 대회 때 만난 영국 소설가는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유럽사만 알면 됐지, 주변 국가들 더구나 먼 아시아 역사까지 알 필요가 없어요. 인도사까지만 해도 그나마 영국 식민지니까 양념으로 배우는 겁니다. 그 나머지는 낭비예요”라고 말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러한 역사인식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나는 속으로 이런 친구가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 동양에 대해 무지하고 무식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적을 잘 알아야 적을 잘 이길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영국 소설가는 모르는 모양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의 사회 시간에서부터 세계 각 나라의 국기와 서울을 달달 외지 않는가. 역시 21세기는 세계를 아는 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구혼 배낭여행 기념으로 나보나 광장 한복판의 늙은 화가에게서 밝은 색조에 환상적인 모티브를 가진 유화 두 점을 구입하였다.
하나는 거실 벽에 걸어두고 늘 밝고 조금은 환상을 가지고 살자며 다짐하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동아리와 연계하고 있는 사회복지기관의 복도 벽에 걸어서 그들도 세상 살아내기를 환하게 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베네치아광장에는 통일 이태리의 초대 국왕인 임마누엘 2세가 말을 높이 타고 높이 날고 있는 조각상이 있으며, 중앙에는 대사상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천동 기마상도 있다. 오른 쪽에는 미켈란젤로의 코르도나다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오르면 캄피돌리노박물관이 나오고 반대편에는 로마의 건국신화의 상징인 늑대 쌍둥이 소년상도 있다.
그 앞에는 과거 잘 나가던 시절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폴로 로마노 광장이 나온다. 세기적 대결에서 “브루투스 너마저도……”라고 하면서 시저가 죽어갔던 원로원(Curia)도 있다. 인간의 배신이 이렇게 극적으로 묘사된 드라마도 드물다. 근처에는 콜로세움! 이 일대가 조각과 유적의 거리이다. 로마 시내 전체가 경주와 같은 역사와 유적과 배신의 땅이다. 그레고리 팩과 오드리 헵번의 나비잠 같은 화사한 사랑이 시작되는 트레비 샘도 나온다.
신상성(申相星) 프로필
문학박사, 소설가.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졸업.
<동아일보> 신춘문예 ‘회귀선’소설당선(1979), <풀과별> ‘경춘열차’ 시 신인상(1975).
디지털서울문예대학 및 피지(FIJI) 수바외대 설립자 겸 초대총장, (사)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 이사장, 국제한국어평생교육원원장, 국제펜클럽한국(PEN) 대외협력위원장, 전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부회장, 문예운동, 조선문학, 한국 노벨사이언스 등 편집위원.
용인대 명예교수, 중국 낙양외대, 천진외대 등 석좌교수.
국가훈장(홍조교육훈장), 국가유공자(월남전), 경기도문화상, 한국펜문학상, 동국문학상, 성호문학상, 중국 장백산문학상 등 수상 다수.
소설집, 평론집, 수필집, 시집 등 저서 약 50여권.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
- 경제
- 사회
-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