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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연숙 시인] 6월 30일, 초모랑마봉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새벽에 먹은 밥 알갱이들이 긴장된 위벽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연신 목구멍으로 시큰한 트림을 부른다. 오래 헤어진 연인 만나러 가듯이 활량거리는 이 마음 진정이 안 된다.
아래배가 부어오름을 참지 못하고 일제히 차에서 내리고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 볼일을……. 이런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벽은 허물어지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여행은 참말로 아름다운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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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이다. 초모랑마는 불타고 있다. 나도 하나가 되어 끓는 감정 주체하지 못하고 황금빛으로 변한 정상을 넋없이 바라보며 감사 하다고 사랑 한다고 잊지 않을 거라고 연신 다짐을 한다. 마치 나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이 초모랑마는 어둠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텅 빈 공간에서 왠지 꽉 찬 듯한 마음은 행복했다. 어둡고 춥고 난방장치도 없는 숙소의 시설은 열악했다. 우리는 가지고 간 누에고치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몸을 옆으로 돌리는 데도 숨이 막히고 땅속으로 꺼져 내리는 것만 같다. 가지고 간 산소기를 한참 들이 쉬다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들기가 힘들었다. 정말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밤새 들려오는 현지인 남자의 노래 소리는 알아 듣지는 못해도 왜 저리도 구슬픈지. 노래와 함께 잠 속으로 빠진다. 갑자기 누군가 툭 치는 것 같다. 풍막 주인이다. 서툰 한어로 밤에 검사를 한다고 귀띔한다. 모든 풍막에는 열명까지만 숙식을 할 수 있단다. 그런데 우리가 인원이 초과 되었기에 검사 할 때만 다른 곳에 피해 있으란다. 미친다. 이 밤에, 이 추운 곳에서 어디로 숨으라는 말인지. 어쩔 수 없다. 우리 몇이 우둘우둘 떨며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을 보니 새벽 2시다. 와~ 불빛 하나 없는 밤이 그렇게도 황홀할 줄이야. 별들이 쏟아진다. 은구슬들이 퍼 붓는다. 추위도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가슴이 뻥 뚫린다. 그렇게 많은 별들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기적 같은 날을 뜻하지도 않은 야간검사 때문에 맞게 될 줄이야. 벌어지는 일들은 이유가 있다는 말이 와 닿는다. 어쩌면 다 좋은 징조라고. 슬픈 일이든 화날 일이든 달갑게 맞으라고. 별들의 잔치를 바라보다 보니 검사가 끝났단다.
더 보고 싶었지만 온 몸이 얼음장이 되어버린 상황에 마려운 오줌 또한 급하다. 서로 손 쥐고 공동변소에서 함께 볼일 보고 나오는데 검은 물체가 슬그머니 우리 앞을 막는다. “이콰이챈.” 변소 문지기다. 돈이 없다고 했더니 그냥 가란다. 바삐 나오다보니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던 게 미안하다. 이 추운 밤에 밤새 구석에 쭈그리고 있을 그가 자꾸만 생각나 초모랑마의 첫날 밤을 불면으로 보낸다.
7월 1일, 초모랑마에서의 아침
기적 같은 이 멋스러운 날이 흐렸다. 안개가 짙어 초모랑마봉이 보이지 않는다. 초모랑마를 밟고 섰는데 봉우리가 안 보이다니…….
꿀꿀해진 기분에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고 밤새 고단한 몸을 라면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캠핑장 가운데 양철곽처럼 생긴 파란 집으로 다가갔다. 세계에서 해발이 제일 높은 우체국이란다. 낮에는 풍막주인들 모두가 그 주위에 앉아 햇빛쪼임을 하며 담배도 서로 권하고 서로의 외로움도 달래고 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고요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그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초모랑마의 관광사업자들이다.
나는 우체국 옆에 돌탑을 세웠다. 초모랑마와 마주 보이게 여기저기에서 큰 돌을 주어다가 헐떡이며 쌓았다. 바람에 넘어가지 말라고 속삭이면서. 초모랑마의 돌들은 이쁘지가 않고 거칠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아 너무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거다.
초모랑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라싸로 떠난다. 기쁨의 만남만큼 이별은 슬프다. 차 안은 음악도 없이 적막으로 무겁다. 주유소에서 잠깐 멈추는 사이에 들판을 혼자 걸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방을 휘둘러 보니 오백 미터 떨어진 곳에 빙 둘러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냥 무작정 다가갔다. 7, 8살 되는 조무래기들이 달려오더니 한어로 “어디에서 오냐”고,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바로 앞에 여인이 볼일 보고 옷을 입는다. 대수롭게 보고 웃어 줬더니 그쪽도 하얗게 웃어 준다. 한참 걸어 둘러 앉은 장소로 갔더니 전부 여자들뿐이다.
할머니들과 젊은 여인들이 모여 앉아 짬빠를 손으로 뜯어 먹으며 쌀로 만든 술을 마시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기어코 말리며 술을 권한다. 하긴 술을 너무 오랫동안 굶은 터라 사양 않고 한 컵 원샷 했더니 또 따른다. 우리의 청주 비슷한 맛이라 두말 없이 또 원샷이다. 아니 글쎄 또 따를 줄이야. 컵도 우리 옛날 보온병 뚜껑이었으니 양이 엄청 많은 건데 말은 안 통하고 손짓으로 사양을 해도 그냥 입에 들이 붓는다. 또 원샷이다. 그랬더니 다들 신나게 손뼉을 친다. 그리고 제일 연장자분이 오더니 나의 옷에 밀가루를 발라주고 포옹한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험악한 히말라야 산맥처럼 강인하고 청장고원처럼 포용력이 강하여 우리조선족들과 너무 닮은 듯한 모습들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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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라궁의 이름은 ‘관은의 성지’라는 뜻으로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답게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려 해발 3,600미터의 고지대에 이렇게 거대한 궁전이 건축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저번에는 밤에 갔기에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현재 검사가 엄격하다. 신분증과 변방증 외에는 개인적인 물건은 소지할 수가 없다.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부다라궁은 전통적인 단일 건축물로 총면적은 13만평방미터이며 전체부지는 36만평방미터, 동서의 길이는 360미터, 남북의 길이는 270미터, 높이는 13층으로 117미터에 달한다.
641년에 토번왕국의 송찬캄포왕이 당나라에서 시집오는 문성공주를 데려오기 위하여 만들었다. 이곳은 크게 제사를 지내는 홍궁과 라마들이 거주하는 백궁으로 결합된 구조인데 티베트의 과거를 몸소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다.
부다라궁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靈塔殿)이 있다. 영탑은 달라이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 전각(殿閣)안에 봉안되었다. 화장한 뒤 뼈만 모아 넣어 두거나 약품처리 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 두는 경우도 있다. 탑신 전체에 도금을 하고 옥돌들과 보석들을 박아 넣고 공로의 크기에 따라 다층식으로 한 층씩 더 올라가며 아주 화려하다. 달라이라마 5 세의 영탑전은 황금이 5,500킬로가 들고 옥돌과 보석이 1만8,086개나 박혀 있다고 한다. 999개의 방, 40여개의 불당, 천여 개소의 불전, 2만여 개 불상으로 구성된, 철골은커녕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 흙, 돌 만으로 지은 부다라궁에는 세계의 박물관들이 탐내는 많은 문화재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자리하고 2천여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36킬로그램짜리 경전만도 7천여종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가 2시간동안 부다라궁안을 돌고 있었는데 “쿵쿵쿵쿵” 방아 찧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바닥을 손보고 있단다. 반질반질한 바닥을 보노라면 얼마나 두드리고 만지고 보완을 했겠냐는 아픔도 서서히 올라온다. 티베트의 민속춤을 보면 긴 막대기로 땅을 내리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부다라궁의 바닥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권력쟁탈도 끊이지 않았던 궁내의 추문들……. 그 많은 어린 달라이라마들이 탐욕의 음해로 이슬처럼 사라졌으니……. 마니차를 돌리며 들어 오는 사람들이 붐빈다. 구석구석 종이돈을 박아 넣은 담장들을 허무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다음의 여행지 조캉사원으로 향한다.
조캉사원은 티베트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부다라궁에서 걸어 얼마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캉사원은 몇 달, 혹은 몇 년을 거쳐 오체투지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바깥까지 넘쳐난다.
7세기, 송찬캄포왕 시기에 건축된 조캉사원은 조는 ‘불상’, 캉은 ‘법당’을 뜻하며 당나라에서 시집온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안치한 곳이다. 순례자들이 부다라궁보다 조캉사원을 더 많이 찾는 이유는 바로 이 석가모니상 때문인 거다. 티베트에 와서 제일로 감명 깊게 느낀 건 아름다운 경치보다 티베트인들의 불심이다. 세상에서 이처럼 생을 다하여 불심에 충성하는 민족은 없을 거라고 본다. 완전히 온 몸을 땅에 밀착시키며 기도를 하는 그들은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생명을 가진 만물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거란다.
오체투지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불, 법, 승 삼보에 큰 절을 올리며 최대의 존칭을 표하는 예법이다. 머리, 팔, 가슴, 배, 다리 오체로 땅에 닿도록 엎드려 부처나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礼)에서 유래된 것으로 교만과 거만을 떨쳐 버리고 하심(下心)의 의미를 되새기는 티베트의 오랜 기도법이다.
조캉사원을 돌고 나니 저녁에는 야외극장에서 장예모 감독의 ‘문성공주’라는 극이 있었다. 산으로부터 깎아 만든 대형극장에서 몇 백 명의 배우들로 구성된, 송찬캄포 시기에 부다라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개한 극을 보노라니 그때의 역사를 체험하는 긴장된 기분에 왠지 모를 슬픔이 올라왔다.
웅장한 역사는 거대한 희생을 동반하는 거다. 모든 휘황찬란한 업적을 찬양하기 전, 우리는 그 아래에 깔려있는 이름도 없는 희생들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7월 3일-여행을 마치며
13일간의 티베트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여행하는 동안 행복했다. 비록 고산증으로 포기하려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용하게 잘 견뎌준 우리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많은 성장을 기대한다. 티베트 여행이라 해봐야 티베트의 3분의 1 지역만 돌아 봤을 뿐이다. 티베트에 대해서 다 말 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으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은 내 일생의 크나큰 수확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지나온 지역들, 그리고 황홀한 절경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 하겠지만 티베트인들의 순수한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것도 오체투지로 기도 드리는 그들의 소망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함께였을 거라고……. 우리는 하나일 거라고……. 이 세상, 더 나아가 우주부터 미소한 먼지까지, 우리 모두 한 덩어리라고……. 얽히고설킨 우리 모두 동그라미 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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