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하석 박원규 선생의 <하석,부모은중경(한량없이 크고 깊은 부모님 은혜)>를 테마로 한 서예전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지난 5월 18일 성대히 개막된 가운데 하석 박원규 선생이 인사말을 하다. |
[글/ 동북아신문 취재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하석 박원규 선생의 <하석, 부모은중경(何石, 父母恩重經): 한량없이 크고 깊은 부모님 은혜>를 테마로 한 서예전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지난 5월 18일 성대히 개막됐다.
이날 서예전에는 국회의원 정종섭, 국회의원 최연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전)문화재청장 나선화, 유나방송대표 정목 스님, 석주박물관 류성우 관장 등 내·외빈 200여명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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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석 한글 작품 ‘나무’: 단어가 보이기 전에 한그루 소나무가 서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10.효(孝)의 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한글 효자이다. |
개막식에서 하석 박원규 선생은 “신이 없는 곳에도 어머니는 있다고 했습니다. 서예가가 되겠다며 세상 물정 모르던 젊은이가 붓을 들었습니다. 이후 5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그 세월을 이겨왔습니다. 작품을 하는 내내 당신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세상을 버리신 지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 속으로 항상 당신의 숨결을 느낍니다”라고 감개무량해 했다.
석주박물관 류성우 관장이 소장한 ‘부모은중경’을 선보인 서예 글씨는 하석 박원규 선생이 백두산 천지물로 먹을 갈아 광개토대왕비 필의로 쓴 것이다. 후대에 남길 걸작을 제작하기 위해 소장자와 작가는 재료 선정 및 서체선정, 작품 제작 장소 등 6년 동안 노력하여 마침내 완성되어 관객 앞에 높이 3.3미터, 넓이 1.5미터의 종이 81장으로 구성된 작품을 선 보였다.
내용은 모두 10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부모의 열 가지 은혜를 제시하고, 잉태의 순간에서부터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자식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가없는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보은의 방법과 그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하석 박원규 선생은 이번 전시에 맞춰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내용의 대작 40여 점을 2018년에 제작하여 이번에 같이 전시하고 이 작품 모두를 석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하석 박원규 선생은 서예가로서 70여 년의 인격을 품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써내린 한획 한획이 눈물이 되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 전시를 보면서 무엇보다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하석은 대학에서 법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뒤 붓 한 자루에 생명을 건 타고난 서예가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한학(漢學) 공부에 고금의 서론(書論)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새롭게 토해내는 기세가 무섭다. 그는 “서예란 붓으로 자신의 마음상태를 드러내는 것으로 한 글자에 마음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백수백복도’를 논해 보자.
1백 개의 ‘수(壽)’ 자와 1백 개의 ‘복(福)’ 자를 조합해 만든 거대한 그림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수복(壽福)’이란 제사를 지내고 나서 상에 올린 술을 음복하는 것, 즉 조상의 덕을 나누어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 입체적 전시 공간 안에 병풍처럼 걸린 서예가 박원규 선생의 작품은 그러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을 담은 반가운 새해 인사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올 한 해도 복이 철철 넘친다. ‘백수백복도’ 속에 작가가 있다.
“서예란 붓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서예 작품 앞에 서면 눈을 뜨고 있어도 맹인이나 다름없다. 중국에서 전래되어 오늘날까지 쓰고 있는 한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로 글자 수만 해도 약 5만 자에 이른다. 더욱이 점과 획으로 이루어져 쓰는 사람의 필체에 따라 변화무쌍하기 그지없어 기본 자를 안다고 해도 그 변형까지 식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뿐인가. 한자는 음을 읽고 뜻을 새기며 쓸 줄도 알아야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있으니, 그 배움의 과정이 바다보다 깊고 우주보다 방대하다. 중국인들이 나라의 보물 1호로 한자, 2호로 서예를 꼽는 이유를, 서예를 ‘궁극의 예술’ 혹은 ‘문자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해할 만하다.
법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서예가 하석 박원규 선생은 이토록 깊고 넓은 서예의 세계에 빠져 수십년 시간을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그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문하로 입문해 서예를 배웠고, 대만으로 떠나 독옹이대목 선생에게 전각을 사사했는데, 그의 스승인 이대목 선생이 전각에 새겨 선물한 글에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원규는 서예와 전각을 공부하는 데도 법도를 준수하며 재능과 도량이 넉넉하다. 그는 예의와 법도를 존중하며 스승에 대한 도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참으로 정연(整然)한 양(樣)이 옛 군자의 풍도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당호(堂號)가 ‘아석재(我石齋)’이고, 이 선생의 누명(樓名)이 곡굉(曲肱)인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실명을 ‘석곡(石曲)’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배운 학맥의 연원을 밝히고 그 뿌리를 기록한 것이다. 이로써 그의 넉넉하고 올곧은 마음가짐을 헤아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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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석 박원규의 ‘不狂不及(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
스승이 선물한 칭찬의 글에 보답이라도 하듯 박원규 선생은 그때나 현재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학업에 정진하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압구정동에 마련한 작업 공간 ‘석곡실’로 나가 글을 쓰고, 그도 모자라 여름과 겨울에는 한 차례씩 기나긴 칩거에 들어간다. 그 수행 시간이 승려의 수도 생활이나 다름없어 스스로 하안거(夏安居, 승려가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일정한 곳에 머물며 수도하는 일)와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라 이름 붙이고,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글에만 매달린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 동안 그가 남긴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1985년에 펴낸 <마왕퇴백서노자임본>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이 책은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노자의 덕도경임서본으로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도덕경>이 잘못된 표현임을 밝혀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도덕(道德)’은 덕이 주어이므로 ‘덕을 인도함’이라는 뜻이고, ‘덕도(德道)’는 도가 주어이므로 ‘도를 높임 혹은 키움’이라는 뜻이다. 노자의 사상은 도를 키우는 것이지 덕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므로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이라 불러야 맞다(박원규 선생이 이 책을 냈을 때 가장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본 곳은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이처럼 유의미한 작품집을 수십 권이나 냈고, 1999년에는 서예 전문 잡지 <까마>를 창간해 서예사와 서예가를 조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백수백복도’ 앞에 서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흥미로운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선생의 전시를 사진으로만 본 어느 신문기자는 “모든 글씨의 한 획은 꼭 붉은색”이라는 부제를 달아 붉은 획이 디자인적 요소인 것처럼 해석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福’ 자의 기원은 제사를 지내고 나서 상에 올린 술을 음복하는 것, 즉 조상의 덕을 나누어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 바로 그 복 자에 빨간 획이 하나씩 있는데, 이는 제사상에 오르는 생고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로로 쓴 붉은 획은 상 위에 놓인 생고기를, 세로로 쓴 붉은 획은 고기에서 흘러나온 피를 뜻한다.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면 서예 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가 직접 쓴 대형 갑골문 작품도 괄목할만한 작품이다. “갑골문은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 즈음에 발견된 문자인데, 큰 글자는 거의 다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요. 이것은 갑골문 자체가 점사(点辭, 점괘에 나타난 말 또는 점괘를 풀이해 길흉을 보는 괘사)였다는 걸 의미해요. 점을 친 결과를 새겨놓은 거죠. 그 당시에는 나라에 점을 치는 관리가 따로 있었어요. 왕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가 점을 치는 것과 전쟁을 치르는 거였죠.
한때 거북점은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한 점이에요. 거북의 등과 배 껍데기, 짐승의 큰 뼈 등에 글을 새겨 넣고 불을 지펴서 쩍 하고 갈라지는 걸 보고 길흉을 점쳤다고 해요. 그 결과를 등딱지나 뼈에 새겨 넣은 게 바로 갑골문이고요.”
글자에도 골과 근, 육과 혈이 있다 박원규 선생은 서예를 흥미롭게 감상하려면 ‘글자와 사람의 몸은 같다’는 명제를 먼저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글자에도 사람의 몸처럼 골과 근, 육과 혈이 있다는 것이다. “글씨란 사람이 움직이는 이치와 같아서 두 팔과 두 다리, 이 네 가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춰져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골(骨)은 필획 중에서 힘을 나타낼 수 있는 골격을 뜻 합니다. 근(筋)은 사람의 힘줄처럼 글자의 획 간에 기맥이 서로 통하도록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육(肉)은 먹물의 농담을 비유해 선의 굵고 가늚, 즉 살찌고 마름을 뜻합니다. 혈(血)은 필획이 윤택하고 생기가 있어야 하므로 먹물의 신선함을 피에 비유하지요. 문자의 점과 획은 점획 자체로는 그 기(氣)를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점획의 운필법을 익힌 후에는 점획을 모아서 하나의 문자를 구성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요. 그래야 비로소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그의 글은 글자를 통해 사물의 형상을 최대한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호랑이를 뜻하는 한자인 범 호(虎) 자는 형태를 본떠 글자를 만든다. 최대한 호랑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호는 호랑이와 사람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윗부분은 호랑이의 가죽 무늬를 나타내고, 아래는 사람의 발 모양을 그대로 호랑이의 발 모양으로 봐서 만든 글자입니다. <채근담>에 보면 독수리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앓는 듯이 걷는다는 말이 나오지요.
기회가 올 때까지 조는 듯, 앓는 듯 기다리는 호랑이 모습. 이 작품에는 강한 사람은 평소 조용하고 부드럽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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