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이란 말이 있다. 현명한 선택은 삶 전체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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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체 사진 |
[글/ 김재연 수필가] 나는 회사에서 주는 포상으로 태국여행을 신나게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우리 사무실에서만 아홉 분이 여행을 가게 돼 더욱 흥이 났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강북 팀 150명이 함께 하는 중대한 행사이기도 했다.
인생은 선택이란 말이 있다. 현명한 선택은 삶 전체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바야흐로 녹색이 짙어가는 지난 5월 13일부터 3박 4일간, 나는 현재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을 내 생애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며, 드디어 태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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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유타사원 |
태국의 고도 아유타야
태국에서 맞는 첫날 아침에 모닝콜이 염치없이 울렸다. 날이 희붐히 밝기도 전, 비몽사몽 간에 기상을 해야만 했다. 호텔 조식은 한국에서 자주 먹지 못하던 흰죽과 말랑말랑한 빵이 있다. 또한, 이름 모를 열대야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귀로만 듣던 아유타야 유적지로 출발했다. 아유타야는 1350년부터 1767년까지 417년간 번성한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였다. 아유타야는 한때 나레수안 국왕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코끼리를 타고 2.5m의 장총으로 버마의 왕을 한발에 사살한 신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태국은 현재도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400개 사원에 19개 성곽을 가진 이 도시는 동서양을 잇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웃 나라인 버마의 침공으로 옛날 번성하던 도시가 폐허로 무너져 내렸다. 그 잔영들로 인해 사원들은 지금도 군데군데 허물어지는 아픔을 충분히 볼 수 있다. 보리수나무 밑에 깔려 들어간 불상 머리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세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보리수나무 밑의 불상은 1991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아유타야 유적 관광은 폐허를 둘러보는 일이었다. 왕궁과 사원들이 모두 파괴된 상태 그대로이다. 지금도 적색 벽돌로 만들어진 많은 탑이나 건축물들은 기울어지고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화려한 건축물과 부조, 아름다운 불상의 남은 부분은 한때의 영광을 드러내면서도 워낙 거대한 폐허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 더 처연해 보였다. 동시에 어쩌면 복구하기 불가능하게끔 완벽하게 파괴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과 많이 다른 유적지를 보며 이것이 후세대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아닌가 싶다. 불상들의 머리, 손, 팔, 다리가 동강 나고 잘려나간 참상을 그대로 보존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여행객이 보리수나무 밑에 있는 불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두 손으로 합장하면서 경건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려가는 계단 밑으로 골목 사이마다 처절한 전쟁의 아픔이 엿보였다.
차오프라야강 크루즈 야경
차오프라야강은 태국 방콕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국에서 가장 큰 강이다.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365km 이상을 흘러 방콕을 통과하여 타이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전체 길이는 1,200km이며, 160,000㎢의 용수량을 가지고 있다. 메남강으로도 불린다. 메남은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 강은 태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관통한다. 또한 차오프라야강과 지류들에 운하를 건설하여 치밀하게 연결하였다. 덕분에 아유타야 상인들은 차오프라야강 어디서든 배를 타고 방콕 앞바다 타이만으로 진출할 수가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차오프라야강에 수많은 배가 있었다. 태국사람들은 배에서 생활하며 먹고 자며 상업에 종사했다. 지금은 수상 시장을 떠다니는 배들이나, 수상가옥에서 희미한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사원에서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수로에 먹이를 던지면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몰려든다. 이 강에 서식하는 거대한 도마뱀이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에 초현대식 고층건물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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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챠오프라야강 선상단체사진 |
우리 팀은 이 강에서 야경을 보고 유람선 여행을 하게 된다. 백오십 명이 집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차오프라야강은 우리의 일상을 시원히 날려 주듯 거침없이 흘러간다. 출항과 동시에 팀장이 오프닝연설을 하고, 최고 직급자 세 사람이 덕담을 했다. 1, 2층에서 배가 흔들리도록 건배를 외쳤다. 개인 장기자랑이 끝나고 만찬뷔페와 여유로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와인을 두잔 쯤하고 있을 때 위층에서 익숙한 멜로디의 구수한 색소폰 소리가 한껏 부풀어 있는 우리의 낭만적인 가슴을 적셔왔다. 이선희의 ‘인연’, 장윤정의 ‘초혼’, 등 여러 곡이 연주됐다. 나중에 검은 중절모자에 블랙 의상을 입은 연주자가 우리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연주했다. 연주자는 색소폰을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장난감 다루듯이 능수능란하게 멋지게 연주했다. 음악에 잔뜩 취한 여사님들이 연주자의 가슴에 팁이라며 돈을 마구 찔러 주었다. 선상에서 저녁노을과 함께 단체촬영 사진을 남기자는 연락을 받고 모두 올라갔다. 시원한 차오프라야 강바람과 함께 진한 핏빛 노을은 어느 미술가의 정교한 솜씨로 저녁 하늘을 곱게 물들여 놓은 듯했다. 150여 명의 여사님들은 낭만과 운치가 흐르는 노을과 함께 챠오프라야강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추억의 사진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단체촬영을 마치고 개인 촬영도 마치자 우리가 탄 배가 나루터에 도착했다.
라마4세 여름궁전
라마4세는 몽꿋왕으로 알려진 태국의 짜끄리왕조의 네 번째 군주이다. 재위 기간은 1851년부터1868년까지 17년이며, 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왕 중의 하나이다. 1946년 영화를 바탕으로 한 <왕과 나>라는 연극은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통치 기간에 서양의 개혁을 포용했고, 기술과 농업 분야에서 시암의 현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묘비명에 있는 “시암의 과학과 기술의 아버지”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마4세 여름 궁전은 1858년에 지어진 곳으로 자신의 휴양과 특별한 손님을 초대하기 위한 장소이다. 이곳은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자라 잡고 있으며 태국 왕조 최초의 별장으로 기록되었다. 라마4세 여름 궁전은 후아흰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황금사원과 기념비가 격조를 한층 높여 준다. 태국, 중국 및 유럽풍의 건축양식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언덕에 케이블카가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단지 문제라면 궁전으로 향한 계단을 올라갈 때 갑자기 양쪽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뛰쳐나와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은 것이었다. 뒤로 물러섰더니 이놈도 약한 사람을 알아보는지 앞으로 한 발 더 달려들었다. 그러다가 앞에 가는 동료의 다리에 들러붙어서 기절할 뻔 했다. 원숭이들이 얼마나 잽싼지 우리 팀원 중 한 동료의 음료수병을 낚아채가면서 목선을 벌겋게 피가 나도록 긁어 놓았다.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원숭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음료수 뚜껑을 아주 익숙하게 열어서 여유롭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원숭이들의 세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해진다.
하늘은 파랗다 못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맑았다. 높은 전망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우리들의 심장까지 식혀 주는 것 같았다. 유럽풍의 흰색 건물이 그림을 펼쳐 놓은 듯 환상적이었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태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고 멀리 다른 궁전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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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한 재래시장, 기차가 들어 오는 정경 |
위험한 재래시장
1905년 문을 연 이 시장은 아무 특별한 것 없는 시골 시장이었지만, 나중에 한 가운데로 철로가 뚫리면서 지역 명물이 되었다. 현지에서는 이 시장을 ‘딸랏 롬훕’으로 부른다. 딸랏은 ‘시장’, 룸은 ‘우산’, 훕은 ‘접다’이니 ‘우산을 접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매일 네 차례 왕복하는 기차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열한 시 반에 모이기로 하고 한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졌다. 삼삼오오 헤어져 각자 필요한 것을 사기도 했다. 시장 안은 무더운 날씨와 함께 비릿한 생선 냄새가 느껴졌다. 철길 양쪽에는 이름 모를 열대과일이며 각종 채소가 우리들의 시선을 끌었다. 동글동글한 파란 가지도 자두 크기만큼 하고 양배추도 마늘 크기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새끼손가락 크기 만한 바나나에 눈길이 꽂혀 한 다발을 샀다. 다양한 생선과 메기 바비큐 맛이 궁금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역무원이 베이지색 옷을 입고 호각을 불며 파랑, 빨강 깃발을 들고 방송으로 대피령을 내렸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적응된 듯 불과 삼분도 안돼 신속히 대피했다. 기차는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상인들은 기차의 높이에 익숙한 듯했다.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레일 위를 지나갔다. 이런 번거로움은 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이색적으로 보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이란 별칭이 붙었다. 철길시장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동남아 쪽으로 여행 오면 사람들은 망고나 두리안 코코넛을 많이 산다. 이 시장은 똑같은 물건인데 가격이 조금씩 달랐다. 한 사람이 열 봉지씩 사다 보니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재래시장은 물건도 다양하고 저렴했다. 가는 곳마다 이 나라의 자랑인 코끼리가 치마, 바지 등 옷과 가방에 그려져 있어 코끼리 세상이었다. 일행 중 두 사람은 다양한 물건을 구매하다가 양산을 두고 오고, 브랜드 선글라스를 두고 오기도 했다.
수상시장
담넌 싸두악 수상 시장에 가서 보트를 타면 1시간 정도 수상 가옥과 수상 시장을 돌아볼 수 있다. 여기는 자칫하면 바가지를 쓰기 쉽다. 담넌 싸두악 수상 시장은 똔켐 운하에 형성된 시장으로 똔켐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양쪽으로 작은 쪽배를 타고 온 열대 과일, 채소, 해산물 식당, 음료 등 행상들로 북적인다. 우리 일행은 구명조끼를 입고 여섯 명이 한 조로 쪽배를 타고 출발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코코넛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 위에 꽃 한 송이까지 올려놓은 감각까지 아주 예술이었다. 더위 먹은 속을 달콤하고 상큼한 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달래 주어 환상적이었다. 배들이 얽히고설키는 동안 상인들이 여행객들을 태운 배를 붙잡고 물건을 판다. 옷 파는 가게에서 배들이 추돌하는 바람에 잠깐 위태로웠지만, 옷가게 주인이 잽싸게 긴 고리로 우리 배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그분의 직업의식에 감탄했다. 우리는 모자 파는 쪽배를 발견하고 너도나도 써봤다. 200빠트의 모자를 흥정해 보니 150빠트에 살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 현관으로 나오니 똑같은 모자를 100빠트에 살 수도 있었다.
태국마사지
태국 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마사지다. 누구나 태국에 가면 한두 번쯤 받아 보고 싶은 코스일 것이다. 며칠간의 힘든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바로, 매일 여행을 마치고 저녁마다 받는 마사지 시간이었다.
온종일 걸어서 피곤한 몸을 마사지사들에게 맡기면 피로를 싹 풀어주어서 매일 이 시간이 기다려졌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불빛 아래서 태국이 생산하는 특유의 아로마 요법으로 여독을 달래는 시간이다. 마사지사들은 전신을 오일로 풀어 주면서 숙련된 테크닉으로 온몸을 시원하게 해줬다. 마사지를 받고 나면 온몸이 날아갈 듯하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나는 계절의 여왕인 5월에 태국에서 왕비 같은 대접을 받았다. 맨 처음 태국을 방문했을 때는 방콕과 파타야를 방문했는데 그때의 추억도 좋았다. 이번에는 고도 아유타야, 차오프라야 야경, 라마 4세 궁전, 위험한 재래시장, 수상시장, 태국의 마사지 등등 많은 곳을 구경을 했다. 아직 태국을 적어도 몇 번 더 와야 할 것 같다. 다음에는 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푸켓, 태국 북부 여행의 꽃–치앙마이를 다녀 보고 싶다. 여행은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를 줄 뿐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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