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心魂’ 순박하지만 강렬하다

캔버스 앞에 다시 선 ‘바보화가’ 몽우 조셉킴
발행인겸편집인: 강철용 kgmsa@naver.com | 2015-12-07 14: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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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F (116.8cm x 91.0cm) - 내 그대를 보고싶었소

 

강철용 편집장겸 발행인

난치병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화가 몽우 조셉킴(김영진)은 병마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암과 백혈병,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그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중퇴다.


"열한 살에 처음 병을 앓았어요. 백혈병이었죠. 백혈병이 치료될 즈음엔 암이 저를 덮쳤어요. 설암과 식도암에 걸렸는데, 지금은 거의 완치됐습니다."


유년시절 사진관을 운영했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실사그림을 그리는데 관심을 가졌다. 물론 별도의 미술수업은 받지 않았다.


조셉킴의 첫 스승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 서예, 전각, 그림 등 다방면에서 예술적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조셉킴은 자연스럽게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웠다. 그가 건강문제로 학교를 그만두자 그의 아버지는 전각과 서예, 초상화 등을 가르치며 아들의 예술적인 재능과 감성을 키워주는 데 힘을 쏟았다. 청소년기에는 유태인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의 인사동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것으로 젊은 날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50호F (116.8cm x 91.0cm) - 금강산
50호F (116.8cm x 91.0cm) - 달빛,햇살,꽃

 

세계적 컬렉터 토마스 마틴과의 만남


그러던 어느 날 조셉킴의 숨겨진 재능이 한 독일인의 눈에 들어왔다. 그 독일인은 바로 피카소, 샤갈, 엔디워홀 등 세계적인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컬렉터 토마스 마틴이었다.


토마스 마틴이 조셉킴을 인사동 거리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조셉킴을 지켜보느라 5시간 동안이나 그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그토록 인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재능이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후 토마스 마틴은 조셉킴과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고, 암과 싸우는 그를 위해 독일에서 한 병에 100만원 하는 고가의 약품을 꾸준히 보내주었다. 그는 조셉킴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셉킴에 의하면 토마스 마틴이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쏟아 부은 돈이 7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인사동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렸던 조셉킴은 병이 깊어지면서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 “인사동에서 초상화를 그리다가 관광가이드들이랑 친해졌는데, 그 분들이 외국 관광객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죠. 외국 분들이 제 그림을 보고 좋아하시더라구요."


1999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뉴욕의 한 파티장소에서 그의 그림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파티에는 세계의 저명한 평론가들과 미술품 컬렉터들이 모이는 자리였고, 한국의 유명화가 이중섭과 피카소, 호안 미로, 반 고흐 등 인류의 명작들을 소장한 저명 컬렉터들도 참석한 자리였다.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들의 모임에서 파티 배경을 꾸밀 용도로 신출내기 젊은 화가 조셉킴의 작은 작품 500여점이 전시되었다.


이때 마침 미국의 유명한 컬렉터 중 하나가 그 파티 전시장 한 귀퉁이에 보이는 조셉킴의 작품을 발견하고는 눈이 커지면서 그 자리에서300여점을 사들였다. 그러자 다른 컬렉터들도 너도 나도 조셉킴의 작품을 사갔다. 이렇게 해서 1년 동안 판매할 목적으로 가져간 그림 500점이 이틀 만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조셉킴은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림 가치에 비해 그림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때 팔린 그림 중 ’새’ 라는 작품은 여러 차례 되파는 과정에서 한 독일인 컬렉터에 의해 한국의 부동산 재력가에게1억 원에 되팔렸다.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의 소품 그림이 1억 원에 팔린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 토마스 마틴은 80대 중반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일찍이 조셉킴을 알아보았던 토마스 마틴을 미소 짓게 한 일이었고, 몽우 조셉킴의 그림을 좋아하는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마니아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 50호 F (116.8cm x 91.0cm) - 행복한 독수리

 

▲ 50호F (116.8cm x 91.0cm) - 연못가에서
▲ 4호 F - 生命 생명

 

 

잠깐의 성공과 긴 시련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조셉킴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초등학교도 안 나온 화가가 세계 부유층 컬렉터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명문대학을 나온 한국의 화가들도 피카소나 샤걀 등의 세계적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컬렉터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조셉킴의 뉴욕전시 성공이 단지 우연의 일치거나 한국의 어느 무명화가가 세계적인 저명 콜렉터의 눈에 들어 판매효과가 났던 것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그러나 조셉킴의 진가를 알아본 토마스 마틴은 반 고흐 등 생전에 불우했던 화가들이 사후에 진가를 인정받았던 것과는 달리 조셉킴은 살아있을 때 충분히 그 명성을 떨칠 수 있는 화가임을 피력하며 흔들림 없이 그를 지원했다.


그 후 조셉킴에게도 많은 돈이 들어왔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조셉킴은 갑작스럽게 돈이 생기자 엔티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아주 나빴다. 사업시작 1년 만에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이후 건강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화풍에 회의마저 느껴 왼손을 망치로 내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화가로서의 인생도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왼손잡이 화가에서 오른손잡이로


당시 그는 매우 궁핍했다. 밥 사먹을 돈도 없었지만 어쩌다 돈이 생기면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팔아 하루하루 빚을 갚고 나면 주머니에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빵조차 사먹을 돈이 없어 커피자판기에서 밀크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낮에 작업하는 화실을 겸한 공방에서는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 날 상황이었다. 밤에 작업하는 화실에서도 세가 밀려 전기가 끊어졌다. 그는 자주 죽음을 생각했다. 그 시절 그를 살린 것은 이 사자 그림이다. 그는 “당시에 만약 독일의 컬렉터가 이 사자 그림을 구입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셉킴은 이 사자 그림을 그리면서 치유와 함께 단련이 되었다고 한다. 큰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 일어나 가겠다는 다짐으로 자신을 담금질했다.


돌아보면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그는 행복과 희열 속에서 작업을 했다.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그의 시련을 작은 것으로 만들었다.


’토마스 마틴’과 스페인 미술 컬렉터 ‘호세디아즈’라는 콜렉터에게 선택을 받은 것은 어쩌면 조셉킴에게는 큰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몽우 조셉킴의 그림 세계를 본 컬렉터들은 피카소적인 화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한 수식어들은 아마도 조셉킴을 선택한 컬렉터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조셉킴을 아끼는 그의 콜렉터들의 헌신적인 도움은 조셉킴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조셉킴은 왼손을 못쓰게 된 대신 오른손잡이 화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눈물 겨운 노력을 했다. 잠깐의 성공과 긴 좌절, 그리고 이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얻은 지혜는 그를 한층 더 겸손하고 성숙한 화가로 다듬어 주었다.


잠시의 성공 이후 작가는 긴 무명시절을 겪게 되면서 왼손잡이였던 화가는 급기야는 왼손을 망치로 내리치고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다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일념에 익숙하지 않던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기를 응원하는 세계의 컬렉터들


조셉킴의 지인인 한국의 미술평론가 김 호는 이렇게 증언한다.


”토마스 마틴과 그분의 지인들은 조셉킴의 건강을 돌보고 왼손잡이에서 오른손잡이가 된 이후의 미술사적인 정립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작가를 돌보려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후원자들의 가족들은 오른손잡이가 된 화가의 작품세계를 지원하는 돈 되지 않는 활동에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소장자들은 작가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를 열망하며 지속적으로 후원하였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작가에게 빚이 있었는데 후원자들은 조셉킴에 대한 빚을 갚아주는 쪽보다는 조셉킴이 그림을 그려 갚아나가도록 하여 다시 재기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토마스 마틴은 직접 적인 도움 대신에 의료진과 심리상담가, 미술사가를 연결하였는데, 화가의 삶에 일체의 영향을 주지 않도록 계약이 되었습니다. 참 특이한 방식으로 화가를 도와주었죠."


지금 한국의 한 병원 갤러리에서 조셉킴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 2014년도 여름, 토마스 마틴, 호세디아즈를 비롯한 조셉킴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외국인 컬렉터들이 한국으로 조셉킴의 작품들을 보내왔다. 조셉킴을 돕기 위해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조셉킴의 그림들을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도록 보내온 것이다. 지난 시간 고난과 역경의 터널을 막 빠져 나와 캔버스 앞에 선 작가가 무엇을 보여줄지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작가소개
조셉킴(아호:몽우) Joseph Kim

 

▲ 조셉킴(아호:몽우) Joseph Kim

 












1976년 서울 상도동 출생
1991년 유태계 미술인 아브라함 차 사사
1999년 뉴욕 소품전
1999년 한국 인장 작품 공모전 전각부문 금상
2005년 제1회 개인전, 부산 쥬디스 백화점
2006년 제2회 개인전, 부산 인피니티
2008년 제3회 개인전, 서울 sk허브 갤러리
2011년 저서 -<백석평전>(2011, 미다스북스)
2011년 저서 -<바보화가>(2011, 동아일보사)
2011년 저서 -<이중섭을 훔치다>(2011, 미다스북스)
2013년 저서 -<어느 천재화가의 마지막 하루> (2013, 미다스북스)
2014년 소품전, 서울 아트 시크릿 갤러리
2014년 J.Auction Gallery 몽우 조셉킴 초대전
2015년 한경갤러리 몽우 조셉킴 작품 전시회
2015년 건국갤러리 몽우 조셉킴 작품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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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화가>

토마스 마틴: 독일 미술컬렉터
가난한 화가는 돈이 없어 명품 붓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도배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팔레트를 들고 그림을 그릴 공간이 없어 좁은 두세 평의 공간에서 밥그릇에 물감과 오일을 개어 그림을 그렸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 가난한 그 화가는 마지막 자신의 가는 길이 초라하지 않도록 항상 넥타이를 메고 그림을 그렸다.

마음이 착하여 빚 보증을 서고 화가는 허물어졌다. 그 화가는 요셉의 꿈을 가지고 야곱의 사다리를 기다리는 화가이다. 신을 공경하고 속되지 않아 세상은 그 화가를 바보라고 부른다.

몸에 병이 있어 그는 고독 속에서 예술을 완성한다. 양심에 민감하여 잘 그리던 왼손을 짓이기고 서투른 오른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무언가 열심히 일하여 가족을 위해 일하되 양심을 어기면서까지 그림을 팔려고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가난했고 계속 슬퍼했고 계속 아팠던 가난한 화가. 세상은 그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피카소와 호안 미로, 샤갈을 닮은 화가, 한국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화가, 이중섭을 위안 삼아 그를 존경했던 가난한 화가는 세상의 인정이 필요 없었다.

소년의 심성을 가진 가난한 화가에게 독수리가 날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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