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가오(古奇高): 천천히 제 속도로 걸어요
- 구찌가오(古奇高)는 원목처럼 소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실되고 속물 근성 없는 사람, 달라도 괜찮지만 그 느낌은 옳은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언제나 스스로의 속도를 중요시했다. 그는 분점을 많이 내지도, 너무 많은 제품을 내놓지도, 상장도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시대에 그는 오히려 한 사람의 장인으로 자신과의 쉴 새 없는 투쟁 속에 성장하고 싶다.
-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3-24 12:58:13
본지기자/뤼단칭(刘丹青)
![]() |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친구들은 그를 ‘구찌(古奇는 Gucci의 중문 브랜드명)’라고 부른다. 이 연령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구찌는 성공의 상징이다. 그는 ‘梵几(fnji furniture)’가구의 창업자로, 브랜드의 일본풍의 매끄럽고 단색의 원목 디자인은 어떤 까닭인지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 까다로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많은 젊은이들처럼 구찌는 자부심과 함께 초조함도 엿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정복하려고 한다.
생활 속에서 시작된 기회
그와 전시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구찌는 그가 디자인한 테이블 옆에 앉아 있었다. 이 테이블은 하나의 큰 원목으로 울퉁불퉁 무늬가 있고 네 모서리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물컵이나 책을 움직이면 테이블은 가볍게 흔들렸다. 공간 전체가 매우 한가로웠다.
하지만 구찌는 아주 바쁜 것처럼 보였다. 분명한 것은 그 본인은 그의 가구처럼 한가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날 그는 깨끗한 스웨터 안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에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을 때면 몸 전체에서 고도의 절제와 자기통제, 긴장이 느껴졌다.
‘梵几’는 구찌가 2010년에 설립한 독립 가구 브랜드로 이 두 글자를 택한 것은 ‘梵’에는 ‘참선’을 ‘几’는 가구를 의미하는 단어로, 자신의 가구가 깨끗하고 단순하며 전위적이면서도 소박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가구는 원목 그대로 만들고 불필요한 장식은 하지 않는다. 자르고 대패질하는 등의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중국 전통 가구에서 얻은 영감 위에 일본 스타일과 모던한 디자인 요소를 융합해 ‘모던 차이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가구는 깔끔하면서도 편안하고 대담하다.
이런 가구는 현대인의 심미적 요구에 부합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선호한다.
사람들이 그의 가구를 좋아하는 것은 디자인 감각이 넘치면서도 과하지도 않고, 격조나 생각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디테일은 세심하고, 단순함 뒤에 느리고 섬세한 작업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구찌의 판매방식은 특별하다. 베이징 국자감(国子监: 청조淸朝까지 역대로 설치되었던 국가의 최고 교육 기관)에 있는 ‘梵几’의 게스트룸은 200여 평방미터의 공간이 잘 분할되어 각 스타일의 가구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梵几’는 재고가 없고 신제품 출시도 느려서 1년에 십 여종 정도를 내놓으며 고객이 선택해 주문할 경우 제작 판매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수월하고 분명해서 전혀 힘들 것 같지 않지만, 이 방식을 뚫기 위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구찌는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한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카페 이름은 ‘서랍(抽屉)’으로 샤먼(厦门)에서 오픈 했다.
구찌는 랴오닝(辽宁)사람이다. 그곳은 비즈니스가 별로 없어 그는 ‘투잡’이라는 단어를 대학시절 들어본 적이 없었다. 또한 ‘기업’이나 ‘브랜드’같은 단어도 그저 천일야화같이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천성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변화와 만남을 좋아하는 그는 언제나 자신이 비즈니스에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취엔저우(泉州)에서 대학을 다니던 몇 년 동안 구찌는 뭐든 시도해봤다. 공연을 기획, 주최하기도 하고 장사도 해보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시험 삼아 한 회사에 사무직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4개월만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 |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그는 집에서 6만위안을 얻어 샤먼으로 떠났다. 그 카페가 바로 ‘서랍’이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구찌는 카페를 꾸밀 때 마음에 드는 가구디자인과 인테리어가 없어 스스로 디자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초창기부터 또우반(豆瓣: 중국의 음악, 책, 영화 등을 공유하는 SNS사이트)를 사용한 문학청년으로 그의 또우반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즉 젊고 자주적이며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에서의 삶이었다.
그는 많은 팬들과 인맥, 친구를 얻었다. 이 작은 카페는 하나의 유토피아 같아 친구들은 그곳에서 파티를 열고 한없이 자기들의 생각을 나누고 술을 마셨다.
하지만 카페 운영은 여전히 집에서 보내주는 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께서는 정기적으로 돈은 부족하지 않은지, 더 융통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셨다.
“사람은 특히나 쉽게 의지하죠. 습관적으로 집에서 돈을 가져오면 끊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구찌가 캥거루족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그의 카페에 커피 마시러 오던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인테리어에 반해 리모델링을 의뢰했다. 심지어 또우반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팬들은 아예 그에게 ‘왜 가구 안 팔아요?’하고 질문했다.
당시 경영에 조금 눈 뜬 구찌는 월 경비와 인건비를 계산할 줄 알았고 사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카페를 양도한 돈으로 처음으로 가구들을 제작했다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이 모든 것이 그 6만위안에서시작되었어요. ”
비정상적인 성장 방식에 대항하다
요즘의 구찌는 그때의 자신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그때는 여유 있고 순수하며 너무 많은 것들이 뒤섞이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때 구찌는 겨우 이십 대였고 스스로 그림 그리고 디자인하고, 목재시장에 가서 자재를 찾고 마음에 들면 공장에서 가서 샘플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수정했다. 그의 손을 거쳐간 원목은 수십 종에 달했고 그는 각각의 재질과 색상, 무늬 모두가 제 손금을 보듯 훤했다.
당시 그의 수하엔3~5명의 직원이 있는데 판매, 고객관리, 납품은 모두 그 스스로 했다. 한 달에 20개를 넘지 않는 생산량이나 목공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았다.
구찌는 일본 스타일을 좋아해 일본으로 자주 여행을 갔다. 그는 일본식 건축물이 그에게 아이디어를 준다는 것을 깨닫고 천천히 여행 중 자와 도면을 가져가 좋은 것을 만나면 한번씩 치수를 재어 보았다.
당시의 구찌는 더욱 장인 같았다. 그의 집이 바로 전시 홀이었는데. 그는 여자친구 무바이(墨白)와 함께 살고 있는 100평방미터의 집 안에 20여개의 가구를 놓고 한 주에 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손님이 그의 집을 방문해 가구를 골랐다. 그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주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공개했고 손님은 그의 집 소파에서 앉아 커피를 마셨다.
구찌는 자신의 경영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했다. 우선 판매루트가 있고 그 다음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초의 판매는 쉬웠어요.” 이런 현대적이고 인간관계에 기댄 판매방식이 쉽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구찌는 놀랐다. 그와 고객 사이에는 큰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집을 공개할 수 있었고, 고객도 2만위엔을 흔쾌히 그의 손에 쥐어줄 수 있었다. “중간 담보가 없어도 아무도 물건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품과 판매는 빠르게 하나의 선순환을 형성했다. 고객들은 가구를 사고 또 그가 이를 배치해주길 바랬다. 또한 인테리어 경험을 또우반에 공유하자 곧 이런 물건을 어떻게야 살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다.
이렇게 그의 팀은 최초의 3~5명에서 현재의 30명으로 금새 늘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자본시장은 팽창했다가 또 추운 겨울에 들어가곤 한다. 그는 수많은 독립 브랜드들이 시류를 쫓아 상장을 통해 비상할 기회를 쫓다 결국 본전까지 날리는 상황을 수없이 목도했다.
구치의 조심과 차분함이 이 길목에서 그를 도왔다. 그는 속도 제어에 주목해서 요행이라든가 단 걸음에 정상에 오르는 방법 등을 모두 경계했다. 상장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 생각엔 아니었어요. 이제 겨우 5년된 브랜드가 하나 있는데 갑자기 수억 위안의 자금이 생긴다면 그게 적절한 건가요? 우리가 정말 그럴 때가 된 걸까요?” 그는 모든 정상 발전 규칙을 넘어서는 것들과 대립한다.
구찌의 집에 가본 친구는 그가 완벽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생활과 디테일에 주목하는 삶은 살고 있다. 친구들 모두 구찌가 돈 쓰는 것도 쇼핑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돈을 써서 선물하는 물건에는 결코 뒤떨어지는 부분이 없었다. 그는 진지한 생활인이고 그의 삶은 바로 양분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찌가 고집하는 것들이다. 그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사는지가 바로 그가 어떤 디자인을 하고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를 결정한다. 그는 속과 밖이 한결 같은 사람이고 싶다. 비록 그것이 힘들더라도. “만약 제 삶이 건조하고 영양분 없었다면 좋은 물건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이 부분에 있어 조금 집요하다. “저는 여러 영역을 넘어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홍보, 시장개척, 디자인, 협상 등 이 모든 것이 제 일이죠. 만약 제가 스스로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문제가 생깁니다. ”
자기 관리에 있어 그는 일본인의 방식을 선호한다. 매일 매일 질서정연한 삶은 건강한 업무방식을 유지한다. “어떤 사람들이 스스로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해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강한 이성과 극도의 자제력이 필요하기도 하죠.” 그는 천성이 거리낌 없고 직설적이며 대충 대충하는 예술가 스타일을 부러워한다. “저는 엄청난 관리능력을 동원해 스스로의 성격적 결함을 단속해야 하는 스타일입니다.”
“전문 디자이너는 하기 힘들어요. 다른 일없이 그저 디자인만 생각하고 시간도 쳇바퀴처럼 돌죠. 언제 어떤 물건을 내놓는 것 사실 스트레스가 클 겁니다. 하지만 저는 디자이너기도 하지만 경영인이기도 하죠. 디자인은 제 업무의 1/4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 머리는 1년 중 1/4의 시간만 들여서 디자인을 하고 이 덕분에 저를 활기찰 수 있습니다.”
구찌는 시간관리, 영감관리, 상태관리, 정서관리 등등 모든 일은 관리라는 것을 스스로 천천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포기는 습관이 된다
![]() |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시작 당시 그가 고용했던 3,4명의 직원은 모두 그의 집에서 일했다. 침실 문만 열면 사무실이었다. 자기 생활이 조금씩 침범 당했고 그 또한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집에서도 진짜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비록 그 안에 모든 완벽한 삶의 조건이 갖춰 있었음에도 말이다. “저는 제가 디자인한 완전한 생활에 생명력을 잃고 있었어요.”
한편 가구 디자인의 모든 영감이 모두 구찌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규칙적이고 효과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했다. 창작자로서 그는 의지할 그 어떤 사람도 일도 없었다. 그는 외부와 소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영감이 고갈될까 하는 걱정 때문에 생기는 초조함을 상대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신제품 출시 후 그의 브랜드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어느 정도 성공의 궤도에 올랐다. 그는 이제 좀 느슨해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휴가 3일동안 그는 어느 때보다 더 초조해야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3일동안 저의 스트레스는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컸어요. 머리 속 가득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거의 멘탈 붕괴였죠. ”
그 뒤부터는 쉬고 노는 것은 마치 대기 상태처럼 되고 말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눈 여겨 보며 영감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그 느낌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는 스스로가 즐길 줄 모르고 즐기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깨끗이 비울 수 없었고 오랫동안 긴장 상태에 있었으며 “모든 여행이 연수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한동안 그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 깔끔한 스타일의 이면에 얼마나 긴장한 창작자가 숨어 있는지 그 자신만 알고 있었다.
한동안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다. 팀은 그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고 게다가 관리자인 그조차도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지고 타고난 소질을 발휘할게 하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서자 그도 제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창의적 아이디어와 영감의 고갈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지자 그는 아예 그냥 인테리어만 하고 독립브랜드는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너무 지키고 스트레스도 너무 커 그의 삶이 엉망이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그에게는 또 다른 공포가 있었다. 즉 어떤 일을 너무 쉽게 포기하면 이런 포기가 습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전에도 많은 것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최근 2년동안 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제 생각에 3-40대에는 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 그는 이 시기에 하는 일이 자기 생명의 코어를 조금씩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업 후 몇 년 동안 그는 늘 끊임없이 자신의 성격문제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생각하기 싫어하고 ‘다른 것은 할 줄 몰라’라는 이유로 어떤 일을 계속하기도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계속하려면 수많은 심리 투쟁을 해야 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그가 하는 유일한 방법은 견뎌내며 다른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꽃을 심고 어떤 애완동물을 키울지 고민하고 또는 각양각색의 차를 보면서 머리를 채웠다. “저는 쉴 때 특히 걱정이 많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길 좋아하는 인간이랍니다.”
![]() |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처음엔 구찌도 자주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 계속 자신을 설명하고 묘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이렇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표현하는 일이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내적 소모이며 이런 일이 많아지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의력이나 업무 상태 등에 변화를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브랜드에게는 과도한 소모였고 저의 본업도 아니었죠. 저는 제 본분을 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사고와 수정의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를 대면하려는 성실함은 그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스스로의 속도를 찾다
구찌는 건강한 업무 방식이 필요했다.
그는 시간을 분할하기 시작했다. 매주 5일동안 그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신선한 자극을 만들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창업자의 경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하지만 쉬는 이틀 동안은 그는 이메일도 보지 말고 머리를 비울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일체의 사교활동도 거부하고 집에서 음악도 켜지 않고 극도의 고요 속에 자신을 던졌다.
그는 허심탄회하게 스스로가 쉽게 급해지고 쉽게 허둥대는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를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 3~5년에 이르는 장기 계획을 세우는데 이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은 큰 방향일 뿐이지만 그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는 계획에 없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끼어드는 경우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혐오한다.
이런 ‘가이드 라인’에 저촉되는 일에 대해 그는 일일이 응대하지 않는 것은 배우고 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맑은 상태를 유지하고 합리적으로 이런 일들을 거절하는 것이다.
![]() |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자기관리와 관련된 비법을 이야기하는 구찌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스스로와의 한 판 싸움에서 이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자기 개선의 노력으로 그는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당초 구찌는 스스로를 한 마리 늑대처럼 고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능력이 강한 개인이지 팀워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전 스스로의 패기가 강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언제나 타인의 문제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더니 한마디 더 보충한다. “처녀자리잖아요.”
맨 처음 사장이 되었을 때 구찌는 정말 디테일하게 관리하는 스타일이었다. 누가 인터넷에 접속했는지, 누가 졸았는지, 만약 100보의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상대방이 1보 전진 때마다 그의 요구를 따르길 바랬다. 이는 직원들과 자기 자신을 모두 너무 힘들게 했다.
그는 강제로 자신의 완벽주의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너의 100번째 걸음이 나를 만족스럽게 한다면 중간의 99보는 네 마음대로 걸어도 좋다!”
“제가 이렇게까지 너그러워질 수 있다니 저 또한 놀랐습니다.” 자기 스스로와 싸우는데 한 사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큰 방향에서만 컨트롤하고 작은 부분에는 여유를 주면 오히려 모두가 자기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고 각자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찌가오(古奇高)는 원목처럼 소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실되고 속물근성 없는 사람, 달라도 괜찮지만 그 느낌은 옳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팀 안에서는 판매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디자인은 문제가 없고 판매도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A/S는 어렵다. 그는 이런 상황이 쭉 계속 변함없기를 바란다.
원목가구는 사용하다 보면 여러 문제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목은 여러 더러운 것들을 흡착할 수 있고 또 나무는 수분을 흡수하기도 증발하기도 해서 원목으로 다리를 만든 의자를 일정기간 사용하다 보면 수평이 맞지 않고, 테이블은 오래되면 균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햇빛이 쐬면 산화되어 색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가구의 70%만 디자인할 뿐 나머지는 고객과 가구와의 관계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관련해 모든 문제에 대해 사전에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는 구찌가 고집해온 장인 정신이다.
구찌는 바로 원목가구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점을 좋아한다고 했다. “당신이 20년, 30년을 사용한 가구의 나무 무늬는 디자이너가 절대 디자인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가구와 당신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
인터뷰 며칠 전 구찌는 위쳇 모멘트(微信朋友圈)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이 시대에 어떤 이는 걷고 어떤 이는 날아간다. 걷고 있는 사람은 날고 있는 사람이 부러워 날아올라본다. 하지만 날아오르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고 있어서 네가 무엇을 하고 있던지 매우 느려 보인다.”
그는 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의미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벤처 캐피탈이 들어오거나 상장하고 분점을 개설하는 것 등 수억 위안의 돈을 컨트롤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느낌이 두렵다.
“허세가 무엇일까요? 만약 당신의 품격이 당신의 돈을 컨트롤 못한다면 그게 바로 허세입니다.”그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만약 제가 이것이 어떤지도 말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다면 그것 또한 허세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언제나 스스로의 속도를 중요시했다. 그는 분점을 많이 내지도 너무 많은 제품을 내놓지도, 상장도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시대에 그는 오히려 한 사람의 장인으로 자신과의 쉴 새 없는 투쟁 속에 성장하고 싶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
- 경제
- 사회
-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