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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
[글/ 홍연숙 시인] 2017년 6월 22일, 온라인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진 낯도 코도 모르는 ’티베트여행팀’이 청도비행장에 모였다. 반년 전부터 수소문하여 뭉쳐진 팀이 서로의 얼굴을 오픈 했다. 다들 서먹서먹한 눈치들이지만 오로지 꿈의 여행지 티베트와 신의 영역 초모랑마봉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만사를 지쳐놓고 달려온 뜨거운 마음들이었다. 인사를 간단히 줄이고 서둘러 탑승한다. 우리를 태운 ‘철새’는 3시간 날갯짓에 깐쑤성(甘肅)성의 성도 란저우(난주, 兰州)에 도착하여 15분간 숨 돌린 후 곧장 라싸(拉薩)로 출발했다. 라싸는 중국 티베트자치구(시짱자치구)의 수도이다.
뭉게구름 아래로 회갈색 산들이 하얀 하다를 머리에 이고 엄숙하게 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청장고원이다. 3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방에 군용비행기, 지프차, 대포들이 어마어마하게 자리잡고 있어 안전감보다 긴장이 흘렀다.
어느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빠개지듯이 아팠다. 누구나 오면 아파야 하는 고산증(高山症)이다. 우리는 식사도 포기하고 각자 정해진 자기의 숙소로 들어가 하얀 알약 두 알씩 목구멍에 넘기고 젖은 낙엽이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얼마나 잤을까? 다들 부다라궁에 가자며 깨운다. 저녁 아홉시도 훌쩍 넘은 한 밤의 라싸는 초저녁처럼 들끓는다. 아마 늦게 해가 지는 일기 차이인 것 같다. 사바락사바락 내리는 보슬비 속에서도 부다라궁이 한눈에 안겨온다. 스르르륵 스르르륵……. 거대한 물체들이 끌려오는 듯한 소리에 흠칫 뒤돌아보니 빗길을 엎어지며 기도 드리는 티베트인들이 보였다. 여자도 남자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뒤에 뒤를 이어가는 모습들에 의문들이 사방으로 빗방울처럼 떨어진다. 저들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까? 왜 육체를 저렇게 괴롭히는 걸까? 이 비 오는 날에도 저 흙탕물에 몸을 던져가며 기도를 드릴만큼의 절박함은 구경 무엇인가?
얄루쟝보 강을 지나 융부라캉으로
▲ © 얄루쟝보 강 |
6시 반에 아침식사다. 식당으로 가려고 로비에 들어섰는데 민족복장으로 차려 입은 두 티베트여인이 먹는 음식이 색다르다. 뭘 드시는가 여쭸더니 티베트의 전통음식인 짬빠와 수유차이란다. 그러면서 짬빠 한 덩어리 떼여준다. 미숫가루 맛인데 구수하다. 사실은 손톱만 보지 않았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을 뻔했다. 그 뒤에 수유차는 살짝 입에만 대여보고 말았다. 찻물에다 소금, 버터, 깨를 넣고 끓인 물인데 고산증으로 울렁거리는 통에 속에 받지 않았다. 김치와 된장찌개생각에 쌀죽만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출발이란다.
▲ © 융부라캉(雍布拉康) |
어머니의 강이라고 불리는 얄루쟝보 강변을 달린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선명한 빨간띠의 강이다. 그 옆으로 히말라야 산맥이 하얗게 지켜보고 있다. 얄루쟝보 강은 청장고원의 눈이 녹아 흘러 이루어진 강으로, 라싸를 비롯한 티베트의 중심을 적셔주는 강이다. 네모나게 지은 집들이 드문드문 하나씩 보이고 그 주위로 잘 가꾸어진 넓게 펼쳐진 평지의 논밭들이 얄루쟝보 강의 혜택을 보여준다.
티베트의 최초궁전 융부라캉이 문득 눈에 안겨왔다.
모두들 인민폐 백 위안을 내고 말을 타고 올라갔다. 우리 몇몇은 계단을 걸어서 올랐다. 숨이 턱에 닿는다. 평지에서도 헐떡이면서 뭔 오기를 부렸던가 싶은 게 후회가 가슴을 쳤지만 별수없이 희희낙락 웃으며 올라가는 어린 승려들과 눈을 맞추고 힘을 모으고 또 오른다. 전신을 꽁꽁 싸고 새카만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우리들과 달리 차양모도 쓰지 않고 그대로 햇빛을 다 받아주는 소녀 승려들의 구릿빛 살결이 너무 아름답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손시늉을 했더니 부끄러워하면서도 순순히 들어준다. 하얀 이를 두 손으로 막고 웃는 저 소녀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참 부럽다. 천신만고 끝에 궁에 올랐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촬영이 금지된 사원의 내부는 특유의 향 내음이 베여난다. 가운데 벽에 석가모니상이 있고 좌측에 나트리찬포 초대왕이, 우측에는 송짠감보 32대왕의 상을 두었다. 흠칫 눈에 띄는 풀꽃 한 송이가 메마른 벽 쪽에 알릴 듯 말듯 하게 피어 있다.
가냘퍼서 이 가슴 울리는 저 하얀 미소
강인하여 이 마음 흔드는 저 하얀 바람
오, 히말라야의 풀꽃이여
하늘 호수 남쵸로 가다
▲ © 남쵸(納木錯) |
하루에 300키로 씩 달리는데다가 고산증에 밥맛을 뺏기고도 맥 풀린 눈이 차창 밖을 순간도 놓지 않을 세라 연신 셔터를 누르는 손은 쉴새 없다. 이게 티베트의 마력이다. 우리는 의지와 상관 없이 끌려간다. 해발 4718미터의 고지대에 길이는 70키로, 너비는 30키로이며 수심은 최대 33미터의 남쵸가탕글라 산맥 앞에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티베트어로 남=하늘, 쵸=호수의 뜻을 가진 하늘호수라는 남쵸는 티베트에서 제일 신성한 호수로 성호라고도 불린다. 남쵸의 주변엔 흰 야크들을 몰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돈벌이하는 장사꾼들이 많다. 남쵸의 흰 야크들은 알록달록 실타래로 장식하고 사진 한 장에 백 원씩 받으며 깨끗하고 맛나는 건초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또 잠자리 또한 아늑하고 깨끗하다. 그런걸 보면 먹이 찾아 해발 5,000미터씩 올라가 풀 없는 돌산, 설산을 헤매고 다니는 검은 야크들이 불쌍타. 그래도 의리 있게 꼬박꼬박 집으로 잘 찾아간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고기가 붙었다 싶으면 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검은 야크들. 꼴랑 털 색깔의 차이로 이런 천차만별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야크들의 세상. 그렇지만 흰 야크들은 매일 목 메여 갇혀 있고 검은 야크들은 자유롭게 마음껏 활개치며 쏘다닌다. 선택된 자들의 합리적인 보상이기도…….
남쵸에는 갈매기도 많다. 남쵸의 갈매기들은 음식점의 쓰레기통에서 통 떠나질 않는다. 휘여~ 하고 쫓으면 그냥 둬 발 뒤로 갔다가 또 쓰레기통에 하얗게 둘러 앉아 마실 나온 아줌마들처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다. 참 쟤들은 바다를 알기나 하는지?
남쵸에는 고기도 많다. 하지만 누구도 잡지 않는다. 그냥 관상용이다. 신성한 호수이기에 이 호수의 고기들도 신선의 대우를 받는 거다. 현지인들은 고기밥을 풀어주고 고기들이 몰려오면 여행객들에게 사진을 찍으라 하고는 돈을 받는다. 많지는 않다. 그냥 “이콰이챈(一块钱, 1위안)”이다. 하긴 고기밥 값이나 되려는지 모른다. 산과 강과 호수를 신성시하는 티베트인들 덕분에 티베트는 지금처럼 순수한 모습은 잃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1,000년의 가시나무숲, 그리고 유황온천
티베트 싼난지구 춰나현이다. 마을 밖에는 맨손으로 소똥빵을 빚는 아주머니 바쁘다. 티베트의 유일한 땔감이다. 기후의 차이로 한여름에도 불을 지펴야 하니 식량만큼이나 소중한 소똥이다. 집집마다 쌓아 올린 소똥빵빙들이 부의 상징인 만큼 손가락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풍기는 소똥 냄새에 숨도 쉬기 어려운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맨땅에 둘러 앉아 뜨개질하는 여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 옆에 옹기옹기 모여 앉은 꼬맹이들은 전신 무장한 우리를 기웃기웃 쳐다보며 그냥 웃음이 물방울처럼 터진다. 솜이 삐죽 나온 꼬질꼬질한 옷이면 어떠랴, 까막까막 턴 볼 살에 콧물이 씩 게 발리면 어떠랴, 활짝 핀 얼굴에 마음 만은 풍요로운 것을…….
마을 주민을 따라 한참을 걸어 천 년의 가시나무 숲으로 갔다. 가시나무는 일년에 1미리밖에 크지 못한단다. 하지만 천 년을 조용히 살아온 덕에 십여 미터의 큰 키에 3, 4미터의 굵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지 않았던가. 백 년도 못살 거면서도 서로가 잘났다고 아웅다웅 다투는 저 인간들은 언제 가야 하나의 숲을 이룰까. 날카로운 가시 사이로 뾰족하게 돋아나온 잎은 포실포실 부드럽게 안겨오고 쩍쩍 갈라진 속살들이 까맣게 비여 있어도 전혀 헐벗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고요한 품격에서 티베트인들도 닮아 갔으리라. 이 세상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통통통 경운기에 앉아 유황온천으로 간다. 길옆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며 콜록콜록 토하는 젖 무덤 같은 유황샘들이 신비의 경이로움을 그림처럼 펼쳐 준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통통차에서 내리고 한참을 달렸건만 엉덩이 가릴 작대기도 없어 눈 가리고 아옹이다. 아, 창공을 이리저리 휘젓는 저기 저 매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빙빙 돈다. 무엇이라도 가려야만 문명인이 되는 것처럼 화장실타령을 입에 달고 다닌 나에게 뭔가 선포하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일을 처리 하는 게 똥 위에 똥싸는 것 보다 낫다고…….
매끄러운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니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참 좋다. 바로 옆의 온천에서 장족의 사나이가 열여덟 살이 된 아들하고 물장구치는 알몸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데 비키니 수영복까지 차려 입은 우리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자연에 이 몸을 맡기고 위선을 버리고 멍 때리기에 몰입한다.
‘아이 낙원’ 뤄부꺼우
티베트에도 원시림이 있다. 참 이 나이가 되도록 몰랐던 사실이다. 티베트어로 “아이의 낙원”이라는 뜻인 러부꺼우. 기후가 알맞고 사계절 늘 푸르고 자원이 풍부한 아름다운 원시림이다. 사품치며 내려오는 빙하도 파란색이다. 바위도 파랗고 나무껍질들도 이끼로 덮여 파랗다. 아마 우리의 얼굴도 파랗지 않았나 싶다. 파란 눈들이 파랗게 비추며 골짜기를 오르는데 쌩 하니 길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원숭이들이다. 원숭이들이 북적댄다. 툭툭 치고 뺏으며 텃세가 장난 아니다. 한참을 진땀 빼며 그 놈들을 따돌리고 시원히 툭 터진 중턱에 오르니 절벽으로 잘잘잘 발리 듯이 내려오는 폭포가 햇빛에 눈부시다. 롄화승(蓮花僧) 대사님이 수행하던 곳이란다. 하다들로 오색기로 지폐들로 헤아릴 수 없는 그 믿음들이 뤄부꺼우를 살들이 감싸준다. 하얀 수염이 한 가슴 되시는 할아버지가 독특한 향내와 함께 아래로 내려온다. 산신령이 내려 오냐 다들 놀란 눈치다. 그냥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또 한 분을 데리고 온다. 너무 닮아 보이는 게 아마 형제인 것 같다. 살림도구가 전혀 없는 동굴 속에서 한 가족이 평생을 여기에 뿌리박고 향을 피우며 오로지 불심의 길만 가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자연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들……아름다움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거다. 보는 이의 가슴에 스며드는 거다. 너무나 깨끗하고 너무나 순수해서 놀라운 러부꺼우.
암드록쵸, 그리고 카롤라빙하
해발 4,000~5,000미터의 ‘탠루’ 신장공로는 전인미답의 험로다. 계곡과 산 능선을 따라 용의 꼬리처럼 구불구불 멋진 곡선을 그리며 아슬아슬하게 나있는 도로를 힘겹게 오른다. 해발 4990미터의 캄발라 고개 정상에 오르니 타루쵸와룽다가 반갑게 맞는다. 나부끼는 타루쵸 깃발 사이로 전갈모양으로 길게 누워 있는 옥 빛의 양후 (암드록쵸)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자줏빛 산과 짙푸른 하늘, 흰 뭉게구름, 옥색 물빛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양후는 ‘산 위의 목초지’란 의미로 해발 4,441미터의 고지에 있는 티베트에서 세 번째로 큰 염호이다. 바다가 융기해 생긴 짠물의 호수로, 조개, 암모나이트 등의 화석이 발견된다. 길이 130 킬로미터, 너비 70킬로미터, 면적 638만 평방킬로미터에 총 둘레 250 킬로미터의 거대한 호수다. 호수는 9개의 섬을 품고 있다.
티베트의 4대 신산 중 하나인 만년설의 카롤라 빙하가 앞에 다달았다. 해발 5560미터, 하늘과 맛 닿은 눈부신 카롤라빙하 주위에는 오색의 타르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아리따운 열댓 살의 소녀들이 인민폐 10 위안이라며 사진을 찍어 달라며 조른다. 음식점, 여관들이 즐비하고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인간은 쓰레기로 대 자연을 모독하고 있다”는 박완서 소설가의 소설 <모독>이 떠오른다. 대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내어 주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용만 할 뿐이다. 인간은 인간 서로에게도 그럴 때가 많으니 말해 무엇하랴. 빙하는 계속 녹고 있다. 2035년이 되면 볼 수가 없단다. 그때는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을 카롤라빙하, 이렇게 한없이 바라만 본다.
줘무라일봉, 그리고 뚸칭후
줘무라일봉이다. 해발 7,350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구름 속을 뚫고 하얀 머리 고고하다. 히말라야산맥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초랑모마봉과 자매봉이다. 현지인들은 성녀봉이라고도 부른단다. 사진에는 그 웅장함을 담을 수가 없다. 가슴속에 깊이 그려 넣을 뿐이다. 구름이 지나며 언뜻언뜻 완전한 몸체를 보일 쯤이면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함성을 지른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제일 높은 고산목장을 달려서 뚸칭후라는 돌비석 앞에 멈췄다. 설산이 녹아내려 성스러운 호수가 된 뚸칭후, 끝없는 양떼무리들이 호수에 담겼다. 모래더미에 허리까지 잠긴 뚸칭후 돌비석. 인연이 아닌가 보다. 나의 눈앞에는 뚸칭후가 마르고 갈라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냥 어느 이야기로 들었을 법한 아름다운 호수로 남기다가 혼연히 기억에서 사라져갈 뚸칭후여, 어느 연분을 만나면 아름답게 나타나길!
종산고보와 타쉬룬포 사원
르카저의 장쯔현이다. 고풍스런 종산고보가 멀리 보이고 그 아래로 백거사가 하얀 성벽만 보인다. 티베트교통의 요지인 쟝쯔지방을 방어하기 위하여 1268년에 최초로 건립되고 1365년에 지금의 규모로 확장된 종산고보. 보물창고인 티베트는 끝끝내 인간의 탐욕을 불렀으니 1904년 영국의 침략으로 2개월간 열심히 싸웠지만 최신식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에게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항복하지 않고 절벽으로 떨어져 죽음을 택한 티베트인인들, 지금은 종산영웅기념비를 세우고 영웅성이라고 불리지만 폐허가 되어 들어가 볼 수도 없다. 영화 훙허구우(紅河谷)는 그때의 아픔을 재현한 역사적 사실로 티베트의 옛 영광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타쉬룬포 사원이다. 1447년에 12년 동안 건립한 길이가 3,000미터, 50개 이상의 경당, 3,000여 칸의 방을 가진 거대한 수도원 사찰이다. 사원 내 흰색 건물은 주로 주거용 건물이고 붉은색 건물은 종교적인 용도다. 겨울철 실내 열기가 빠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건물의 창은 작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단다. 창문 주변은 검은색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붉은색은 지혜, 흰색은 자비, 검은색은 금강불을 의미한다. 티베트의 전통적인 집들은 모든 문을 흰색의 천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티베트인들의 자비로움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타쉬룬포 사원은 기도한다. 자비를, 용서를…….
초모랑마봉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새벽에 먹은 밥 알갱이들이 긴장된 위벽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연신 목구멍으로 시큰한 트림을 부른다. 오래 헤어진 연인 만나러 가듯이 활량거리는 이 마음 진정이 안 된다.
아래배가 부어오름을 참지 못하고 일제히 차에서 내리고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 볼일을……. 이런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벽은 허물어지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여행은 참말로 아름다운 고역이다.
초모랑마봉의 제1캠프장(해발 5,955미터)에 도착했다.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고도이며 극한에 도전하는 관문이다. 숨가쁘게 헐떡거리는 우리의 앞에 초모랑마봉이 우뚝 서 있다! 중국과 네팔 국경지대의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해발 8,844.43미터의 세계의 최고봉 초모랑마봉의 이름은 티베트어로 ‘세계의 어머니’란 뜻이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초모랑마봉은 오기로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비싼 비용을 받는다. 극한 경우에 목숨까지 지불해야 하니까. 아직 수거하지 못한 시체 200여구가 그대로 있다고 한다. 그래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등반가들은 점점 많아 지고 있다. 5, 6년이란 시간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왜? 이런 산을 목숨 걸고 올라 가냐고? 산을 오르는 데는 답이 하나가 아니겠지만 자신의 사연을 담고 극복하기 위해서 일거다. 오로지 목숨을 걸고 오르고 목숨을 찾고 내리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초모랑마봉의 등반가들에게 경의를 드린다. 어디에도 목숨을 걸어 본적 없는 나는 초모랑마의 품에서 영하 40도의 추위에 뇌를 조여오는 고통의 저녁을 맞는다.
일몰이다. 초모랑마는 불타고 있다. 나도 하나가 되어 끓는 감정 주체하지 못하고 황금빛으로 변한 정상을 넋없이 바라보며 감사 하다고 사랑 한다고 잊지 않을 거라고 연신 다짐을 한다. 마치 나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이 초모랑마는 어둠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텅 빈 공간에서 왠지 꽉 찬 듯한 마음은 행복했다. 어둡고 춥고 난방장치도 없는 숙소의 시설은 열악했다. 우리는 가지고 간 누에고치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몸을 옆으로 돌리는 데도 숨이 막히고 땅속으로 꺼져 내리는 것만 같다. 가지고 간 산소기를 한참 들이 쉬다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들기가 힘들었다. 정말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밤새 들려오는 현지인 남자의 노래 소리는 알아 듣지는 못해도 왜 저리도 구슬픈지. 노래와 함께 잠 속으로 빠진다. 갑자기 누군가 툭 치는 것 같다. 풍막 주인이다. 서툰 한어로 밤에 검사를 한다고 귀띔한다. 모든 풍막에는 열명까지만 숙식을 할 수 있단다. 그런데 우리가 인원이 초과 되었기에 검사 할 때만 다른 곳에 피해 있으란다. 미친다. 이 밤에, 이 추운 곳에서 어디로 숨으라는 말인지. 어쩔 수 없다. 우리 몇이 우둘우둘 떨며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을 보니 새벽 2시다. 와~ 불빛 하나 없는 밤이 그렇게도 황홀할 줄이야. 별들이 쏟아진다. 은구슬들이 퍼 붓는다. 추위도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가슴이 뻥 뚫린다. 그렇게 많은 별들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기적 같은 날을 뜻하지도 않은 야간검사 때문에 맞게 될 줄이야. 벌어지는 일들은 이유가 있다는 말이 와 닿는다. 어쩌면 다 좋은 징조라고. 슬픈 일이든 화날 일이든 달갑게 맞으라고. 별들의 잔치를 바라보다 보니 검사가 끝났단다. 더 보고 싶었지만 온 몸이 얼음장이 되어버린 상황에 마려운 오줌 또한 급하다. 서로 손 쥐고 공동변소에서 함께 볼일 보고 나오는데 검은 물체가 슬그머니 우리 앞을 막는다. “이콰이챈.” 변소 문지기다. 돈이 없다고 했더니 그냥 가란다. 바삐 나오다보니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던 게 미안하다. 이 추운 밤에 밤새 구석에 쭈그리고 있을 그가 자꾸만 생각나 초모랑마의 첫날 밤을 불면으로 보낸다.
초모랑마에서의 아침
기적 같은 이 멋스러운 날이 흐렸다. 안개가 짙어 초모랑마봉이 보이지 않는다. 초모랑마를 밟고 섰는데 봉우리가 안 보이다니……. 꿀꿀해진 기분에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고 밤새 고단한 몸을 라면으로 위로한다. 그리고 캠핑장 가운데 양철곽처럼 생긴 파란 집으로 다가갔다. 세계에서 해발이 제일 높은 우체국이란다. 낮에는 풍막주인들 모두가 그 주위에 앉아 햇빛쪼임을 하며 담배도 서로 권하고 서로의 외로움도 달래고 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고요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그들은 세계에서 유일한 초모랑마의 관광사업자들이다. 나는 우체국 옆에 돌탑을 세웠다. 초모랑마와 마주 보이게 여기저기에서 큰 돌을 주어다가 헐떡이며 쌓았다. 바람에 넘어가지 말라고 속삭이면서. 초모랑마의 돌들은 이쁘지가 않고 거칠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아 너무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거다. 초모랑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라싸로 떠난다. 기쁨의 만남만큼 이별은 슬프다. 차 안은 음악도 없이 적막으로 무겁다. 주유소에서 잠깐 멈추는 사이에 들판을 혼자 걸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방을 휘둘러 보니 오백 미터 떨어진 곳에 빙 둘러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냥 무작정 다가갔다. 7, 8살 되는 조무래기들이 달려오더니 한어로 “어디에서 오냐”고,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바로 앞에 여인이 볼일 보고 옷을 입는다. 대수롭게 보고 웃어 줬더니 그쪽도 하얗게 웃어 준다. 한참 걸어 둘러 앉은 장소로 갔더니 전부 여자들뿐이다. 할머니들과 젊은 여인들이 모여 앉아 짬빠를 손으로 뜯어 먹으며 쌀로 만든 술을 마시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기어코 말리며 술을 권한다. 하긴 술을 너무 오랫동안 굶은 터라 사양 않고 한 컵 원샷 했더니 또 따른다. 우리의 청주 비슷한 맛이라 두말 없이 또 원샷이다. 아니 글쎄 또 따를 줄이야. 컵도 우리 옛날 보온병 뚜껑이었으니 양이 엄청 많은 건데 말은 안 통하고 손짓으로 사양을 해도 그냥 입에 들이 붓는다. 또 원샷이다. 그랬더니 다들 신나게 손뼉을 친다. 그리고 제일 연장자분이 오더니 나의 옷에 밀가루를 발라주고 포옹한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험악한 히말라야 산맥처럼 강인하고 청장고원처럼 포용력이 강하여 우리조선족들과 너무 닮은 듯한 모습들이 따뜻하다.
부다라궁 그리고 조캉사원
부다라궁의 이름은 ‘관은의 성지’라는 뜻으로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답게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려 해발 3,600미터의 고지대에 이렇게 거대한 궁전이 건축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저번에는 밤에 갔기에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현재 검사가 엄격하다. 신분증과 변방증 외에는 개인적인 물건은 소지할 수가 없다.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부다라궁은 전통적인 단일 건축물로 총면적은 13만평방미터이며 전체부지는 36만평방미터, 동서의 길이는 360미터, 남북의 길이는 270미터, 높이는 13층으로 117미터에 달한다.
641년에 토번왕국의 송찬캄포왕이 당나라에서 시집오는 문성공주를 데려오기 위하여 만들었다. 이곳은 크게 제사를 지내는 홍궁과 라마들이 거주하는 백궁으로 결합된 구조인데 티베트의 과거를 몸소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다.
부다라궁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靈塔殿)이 있다. 영탑은 달라이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 전각(殿閣)안에 봉안되었다. 화장한 뒤 뼈만 모아 넣어 두거나 약품처리 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 두는 경우도 있다. 탑신 전체에 도금을 하고 옥돌들과 보석들을 박아 넣고 공로의 크기에 따라 다층식으로 한 층씩 더 올라가며 아주 화려하다. 달라이라마 5 세의 영탑전은 황금이 5,500킬로가 들고 옥돌과 보석이 1만8,086개나 박혀 있다고 한다. 999개의 방, 40여개의 불당, 천여 개소의 불전, 2만여 개 불상으로 구성된, 철골은커녕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 흙, 돌 만으로 지은 부다라궁에는 세계의 박물관들이 탐내는 많은 문화재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자리하고 2천여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36킬로그램짜리 경전만도 7천여종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가 2시간동안 부다라궁안을 돌고 있었는데 “쿵쿵쿵쿵” 방아 찧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바닥을 손보고 있단다. 반질반질한 바닥을 보노라면 얼마나 두드리고 만지고 보완을 했겠냐는 아픔도 서서히 올라온다. 티베트의 민속춤을 보면 긴 막대기로 땅을 내리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부다라궁의 바닥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권력쟁탈도 끊이지 않았던 궁내의 추문들……. 그 많은 어린 달라이라마들이 탐욕의 음해로 이슬처럼 사라졌으니……. 마니차를 돌리며 들어 오는 사람들이 붐빈다. 구석구석 종이돈을 박아 넣은 담장들을 허무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다음의 여행지 조캉사원으로 향한다.
조캉사원은 티베트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부다라궁에서 걸어 얼마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캉사원은 몇 달, 혹은 몇 년을 거쳐 오체투지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바깥까지 넘쳐난다. 7세기, 송찬캄포왕 시기에 건축된 조캉사원은 조는 ‘불상’, 캉은 ‘법당’을 뜻하며 당나라에서 시집온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안치한 곳이다. 순례자들이 부다라궁보다 조캉사원을 더 많이 찾는 이유는 바로 이 석가모니상 때문인 거다. 티베트에 와서 제일로 감명 깊게 느낀 건 아름다운 경치보다 티베트인들의 불심이다. 세상에서 이처럼 생을 다하여 불심에 충성하는 민족은 없을 거라고 본다. 완전히 온 몸을 땅에 밀착시키며 기도를 하는 그들은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생명을 가진 만물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거란다. 오체투지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불, 법, 승 삼보에 큰 절을 올리며 최대의 존칭을 표하는 예법이다. 머리, 팔, 가슴, 배, 다리 오체로 땅에 닿도록 엎드려 부처나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礼)에서 유래된 것으로 교만과 거만을 떨쳐 버리고 하심(下心)의 의미를 되새기는 티베트의 오랜 기도법이다. 조캉사원을 돌고 나니 저녁에는 야외극장에서 장예모 감독의 ‘문성공주’라는 극이 있었다. 산으로부터 깎아 만든 대형극장에서 몇 백 명의 배우들로 구성된, 송찬캄포 시기에 부다라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개한 극을 보노라니 그때의 역사를 체험하는 긴장된 기분에 왠지 모를 슬픔이 올라왔다. 웅장한 역사는 거대한 희생을 동반하는 거다. 모든 휘황찬란한 업적을 찬양하기 전, 우리는 그 아래에 깔려있는 이름도 없는 희생들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여행을 마치며
13일간의 티베트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여행하는 동안 행복했다. 비록 고산증으로 포기하려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용하게 잘 견뎌준 우리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많은 성장을 기대한다. 티베트 여행이라 해봐야 티베트의 3분의 1 지역만 돌아 봤을 뿐이다. 티베트에 대해서 다 말 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으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은 내 일생의 크나큰 수확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지나온 지역들, 그리고 황홀한 절경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 하겠지만 티베트인들의 순수한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것도 오체투지로 기도 드리는 그들의 소망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함께였을 거라고……. 우리는 하나일 거라고……. 이 세상, 더 나아가 우주부터 미소한 먼지까지, 우리 모두 한 덩어리라고……. 얽히고설킨 우리 모두 동그라미 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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