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질서의 재편

현재 세계질서를 세우는 데는 역내 질서의식을 확립하는 통일된 전략과 더불어 다른 지역질서의 상호연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목표는 완벽히 같거나 자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극단적인 운동이 승리하면 한 지역의 질서는 잡힐 수 있을지 모르나 다른 지역에서 충돌을 빚거나 다른 지역과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개인의 존엄과 참여형 통치를 인정하고 만장일치의 규칙에 따른 국제협력이 이뤄지는 세계질서의 출로이자 우리를 격려하는 동력이라 할 수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1-28 1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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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지정학 세계에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서양의 질서는 현재 전환점에 서 있다. 전 세계는 이 질서가 주는 답을 알고 있으나 이를 활용하는 부분에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민주, 인권, 국제법 등 개념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인 탓에 교전하는 각 측은 이들 개념을 전투구호 삼아 상대를 공격한다. 이 같은 시스템은 그 규칙이 발표되어 있음에도 강제적인 시행수단이 부족해 결국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일부 지역의 경우 파트너십과 공동체의 약속보다는 상대의 마지노선을 시험해 보기 위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며 최소한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서양의 잔소리와 행태가 25년 정치·경제 위기의 원인, 최소한 복선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과 지역질서 붕괴, 종파간 싸움, 테러리즘, 승자가 드문 전쟁으로 냉전시대 초기의 낙관적인 생각—민주와 자유시장이 확장되면 공정하고 평화롭고 포용적인 세계는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다. 

 

“모든 국제질서는 언젠가 합법성에 대한 재정의와 세력균형의 중대변화 등 그 응집력에 도전하는 두 가지 영향에 직면하게 된다.” 


몇몇 지역에서는 이에 맞서는 동력이 나타나 각 분야의 글로벌화의 영향 등 위기를 유발하는 서양 선진국 정책에 저항하는 요새가 구축된다. 기반이 되었던 안보공약이 의심받고 있으며, 보호를 위해 이들 안보공약을 내세운 국가까지도 이를 의심한다. 서양국가들이 핵무기를 대량으로 감축하거나 핵무기의 전략적 역할을 축소하는데 반해,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들은 핵무기 연구에 힘쓰며 미국이 미국판 세계질서를 추진하는 정부를 지지했다가(이 세계질서에 곤혹스러운 적도 있지만) 미국이 이 사업을 끝까지 이어갈 인내심이 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서양세계 질서의 ‘법칙’을 받아들이면 예측할 수 없는 불리한 요소가 생겨난다. 이 관점의 뚜렷한 결과는 일부 미국과 전통 우방국들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력이 다극화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현실적인 갈등이 얽혀 있다. 이 같은 추세가 특정시기에 자동으로 균형과 협력의 세계, 특정 질서에까지 유입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모든 국제질서는 언젠가는 합법성의 재정의나 세력균형의 중대한 변화 등 그 응집력에 도전하는 두 가지 영향을 마주하게 된다. 각종 국제적인 배치를 지탱하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뀌면(또는 이러한 가치관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국가가 포기하거나 전복되고 새로운 합법성 개념으로 대체되면) 첫 번째 경향이 나타난다. 서양의 발전시기가 비(非)서구 세계의 많은 전통질서에 이러한 영향을 미쳤으며, 7세기와 8세기 이슬람교의 첫 번째 확장과 18세기 프랑혁명이 유럽외교에 미친 영향도 그랬다. 이 밖에 20세기의 전체주의와 오늘날 이슬람주의자들이 중동의 취약한 국가구조를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 격변은 실제로는 보통 무력을 바탕으로 하나 그 근본은 심리적인 충돌이다. 공격을 받은 이들 국가는 영토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방식과 생존 및 행동의 도덕적인 권리를 지키고자 한다. 이러한 행동방식은 도전을 받기 전까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 여겨졌다. 특히 다원사회의 지도자들은 자연스럽게 혁명대표와 협상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혁명대표들이 기존 질서의 전제 하에서만 협상을 진행하고 이성적인 해결방안을 찾기를 바란다. 질서가 무너지는 주된 원인은 군사적인 실패나 자원의 불균형이 아니라(자주 그렇긴 하지만) 그들이 처한 도전의 성격과 범위를 정확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란 핵 협상에서는 이란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 밝힌 것이 전략적인 변화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정책을 위한 전술인가? 서양이 전술행위를 전략 방향전환으로 삼을 수 있었는가를 마지막으로 시험해 보아야 한다. 


국제질서 위기의 두 번째 원인은 실제로도 증명되었듯 권력관계의 중대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소련 해체 시 공산주의 국제질서에 일어난 상황처럼 중요한 구성부분의 역할이 중단되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질서가 붕괴될 수 있다. 부상하는 국가가 설계에 참여한 적이 없는 시스템을 분배하는 역할을 하기 원하지 않을 경우, 기존의 대국들은 이러한 시스템의 균형을 조정할 능력이 없어 그들의 부상을 포용할 것이다. 1990년대의 유럽의 경우 독일의 부상이 국제시스템에 이러한 도전을 가져왔고, 두 차례의 재난적인 전쟁으로 이어져 더 이상 회복되지 못했다. 2000년대 중국의 부상 역시 비슷한 구조적 도전을 가져왔다. 중미양국(2000년대의 주요 라이벌) 지도자들이 ‘새로운 대국관계’를 구축해 유럽의 비극적인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고 공약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양국의 공동성명을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중미양국(또는 그 중 하나)이 이러한 개념을 제시한 것은 어쩌면 일종의 전술책략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 역사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질서를 유지하는 두 가지 측면(권력과 합법성)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정치책략의 기본이다. 도덕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권력계산은 매번 갈등을 국력경쟁으로 변화시켜 각국의 야심이 영원히 억제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권력구조 변화를 맞아 각국은 어쩔 수 없이 이해득실을 따지면서도 어떠한 결과도 얻지 못한다. 이러한 방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또한, 균형을 고려하지 않은 도덕적 징계 역시 무력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전을 받기 쉬운 취약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은 모두 국제질서 자체의 응집력을 위협할 수 있다.


기술적인 원인으로 일부 지역의 권력은 전에 없던 번화를 겪고 있다. 오늘날까지 매 10년 동안 합법성이 요구하는 범위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증가했다. 무기로 인류문명을 파괴할 수 있던 시절에는 다양한 가치시스템의 상호작용을 통해 순간적으로 문명을 완성할 수도 있고 전에 없던 침략성까지 지니게 되면 현재 세력균형 또는 가치공동체를 유지하는 계산방식은 시대에 뒤쳐지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불균형이 증가하면서 21세기의 세계질서 구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분야에 중대한 결함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국제생활의 기본적인 공식단위로서의 국가 자체의 성질이 무거운 압력에 직면하며 고의적인 공격과 해체를 당하는가 하면 일부 지역은 도외시로 잠식되고 많고 번잡한 사건들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유럽은 국가의 범위를 벗어나 소프트 파워와 가치관을 통해 외교정책을 계획해 왔으나 사람들은 전략의 개념 없이 찾은 합법성으로 세계질서가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를 의심하고 있다. 유럽은 국가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어 내부권력의 진공상태나 국경지역의 세력 불균형이 쉽게 초래될 수 있다. 중동의 일부 지역은 서로 충돌하는 교파와 민족으로 나뉘어 종교의식이 짙은 민병과 배후 지지세력이 국경과 주권을 함부로 침범하고 있다. 유럽과 반대로 아시아의 도전은 베스트팔렌 세력균형의 원칙이 난무하면서도 동일한 합법성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냉전종식 후 세계의 몇몇 군사 지역에서 ‘실패한 국가’, ‘주인 없는 국가’ 등의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호칭조차 어울리지 않는, 무력사용을 통제하지 못하고 유효한 중앙정부의 권위도 행사하지도 못하는 국가도 있었다. 다양한 준(准)주권 당국은 애매하게 행동하고 폭력을 신봉하며 각기 다른 문화에 대해 극단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국이 이러한 당국을 조종하는 것을 외교정책으로 삼는다면 무정부 상태가 불가피하다. 


둘째, 세계의 정치조직과 경제조직이 보조가 맞지 않는다. 국제경제 시스템은 이미 세계화가 되었는데 세계정치 구조는 여전히 민족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동력은 상품 및 자본 유동에 불리한 장애물을 없애는 데 목적이 있는 반면 국제정치 시스템은 주로 각기 다른 다양한 세계 질서관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국가 이익관을 중재하는데 목적이 있다. 본질적으로 국가의 경계를 고려하지 않는 경제 글로벌화와 달리 국제정치는 각국의 상충목표를 중재하면서도 국경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한다. 


이러한 동력의 작용으로 세계경제는 몇 십 년간 성장을 이어왔고, 그 동안 점점 심각해지는 듯 보이는 금융위기로 성장이 수시로 중단되었다. 198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1997년의 아시아, 1998년의 러시아, 2001년과 2007년의 미국, 2010년의 유럽 금융위기가 그 예이다. 승자(합리적인 시간 안에 이 같은 폭풍을 견디며 성장을 이어온 국가)는 불평이 없다. 그러나 패자(구조적 침체기에 빠진 국가로 유럽 남부의 일부 국가가 이러한 상황에 속한다)가 찾는 구제방법은 글로벌시스템의 작동을 부정하거나 최소한 방해했다.


발생 원인은 각각 다르지만 위기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투자 과열과 위험을 무시한 것이다. 인류가 발명해 낸 금융도구가 관련 거래의 본질을 덮어버렸다. 대출기관은 자신의 공약을 평가하기 어렵고 채무자(대국을 포함해)는 채무의 진의를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제질서는 번영이 글로벌화의 성공에 달려있으나 이 과정이 현실의 소원에 불리한 정치적 반응을 만든다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 글로벌화 된 경제의 경영자는 글로벌화 된 정치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고, 정치과정의 관리자는 국내에서의 지지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나 금융문제에 사전에 대비하고 나서기를 원치 않는다. 문제가 매우 복잡해 전문가만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전이 통치문제로 바뀌었다. 각 국 정부는 글로벌화가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거나 중성주의(mercantilism)의 방향으로 기울도록 하는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서양에서 글로벌화 문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외교정책 문제와 매우 밀접하다. 국제 정치질서와 국제 경제질서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기존의 관점, 즉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이유는 국가의 틀을 넓히기 위함이며, 세계화를 규범화해야 하는 이유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전통적인 모델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관점과 대치되었다. 


셋째, 효율적인 체제가 없어 대국이 중대문제에 대해 교섭할 수 있고 협력까지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 많은 다자간포럼이 열리고 있는 오늘날 위와 같은 비판은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가장 권위 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 교착국면에 빠져있는 UN 안보리 외에도 NATO와 EU가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서양 정상회담도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지도자들의 APEC과 동아시아정상회담. 선진국의 G7 또는 G8, 주요경제체인 G20이 있다. 미국은 이 모든 포럼의 중요한 참여자이나 회의의 성격과 주기가 장기전략을 설명하는 데는 불리하다. 토론의 일정과 정식 의정협상이 대부분의 준비시간을 차지한다. 각국 지도자들이 정기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기 어렵다 보니 일부 포럼은 실제로 각국 지도자들의 일정을 둘러싸고 돈다. 참가국 지도자는 직무상의 원인으로 회의에서 보인 행동의 공개적인 영향에 더욱 신경 쓰다 보니 전술적인 의미나 대외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과정은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도록 강요하는 것 외의 다른 용도는 없다. 기껏해야 시급한 전술문제에 대한 논의로 잘 하지 못해도 새로운 형식의 ‘사교매체’ 활동일 뿐이다. 국제규칙과 규범의 틀이 유용하다면 공동선언문을 통해서만 확인해서는 안 되며 일종의 공동신념을 만들어내야 한다. 


“국제시스템 재건은 이 시대의 정치가들의 재능에 대한 최종 검증”


실패의 결과는 국가간의 대규모 전쟁이 아닐 수 있으며(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특정 국내 구조나 통치형식과 일치하는 다양한 세력 범위(베스트팔렌 모델이나 극단이슬람 버전)로 변할 수 있다. 그 국경지대에서는 각 세력범위가 자신이 합법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질서의 실체에 자신의 힘을 시험할 것이다. 그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통신하며 서로 끊임없이 부딪힌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긴장국면이 결국 전(全)대륙, 나아가 세계적인 지위와 우세를 추구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지역간 투쟁이 과거 국가간 투쟁보다 처참할 수 있다. 


현재 세계질서를 세우는 데는 역내 질서의식을 확립하는 통일된 전략과 더불어 다른 지역질서의 상호연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목표는 완벽히 같거나 자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극단적인 운동이 승리하면 한 지역의 질서는 잡힐 수 있을지 모르나 다른 지역에서 충돌을 빚거나 다른 지역과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한 국가가 한 지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면 질서가 잡힌 듯 보여도 세계 다른 지역에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존엄과 참여식 통치를 인정하고 만장일치의 규칙에 따라 국제협력을 진행하는 세계질서가 출로라 할 수 있으며 우리를 격려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중간단계를 거쳐야 한다. 매 시기마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쓴 것처럼 ‘추상적인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한 실행 가능한 계획을 묵인하고 더 이상의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을 수 있다. 단번의 성공을 고집하면 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환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전략과 외교는 복잡하게 꼬인 앞길을 받아들이면서 목표의 숭고함과 위대함을 바라보고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비의 상고시대부터 역사에 나타난 인류사회는 변화와 충돌이 가득해 구제불능이었다. ‘세계질서’는 화염과 같이 ‘적당히 타다 적절한 때에 꺼지지만’, 전쟁은 ‘세간의 상제과 임금’으로 세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사물은 표면 아래로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이 통일은 서로 대립하는 사물 사이에서 균형 있게 대응하는 것에 달려있다.’ 오늘날의 시대는 전쟁을 끝내고 균형을 실현하며, 역사의 급류 속에서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인간은 같은 강에 두 번 뛰어들지 못한다’는 유명한 은유가 있다. 영원히 역사를 하나의 강으로 볼 지도 모르나 강물은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본 기사는 작가의 저서 <세계질서(世界秩序)>에서 발췌한 글로 중신(中信)출판사의 위임으로 본 간행물에 발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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