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밖의 츠즈졘(迟子建) (2)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4-27 10: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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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픔을 남에게 보이지 말라”


‘화피 가방을 지고 얼음 밭의 달빛을 주우러 간다. 얼음 위의 달빛이 두껍다. 삽으로 뜨자 크림 같은 달빛이 밀려 올라온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화피 가방에 지고 와 땔감으로 쓴다.’ 

 

츠즈졘의 중편소설 <원시적인 풍경(原始风景)>의 한 구절이다. 그녀는 “달 빛이 참 밝은 곳에 살았거든요. 달은 제게는 생명의 불이에요.”라고 설명한다. 


베이지춘(北极村)의 여름은 길다, 날이 저물고 두 시간만 지나면 다시 해가 떠 잠을 방해한다. 기온은 대부분이 영하 30도, 창문을 열면 눈 덮인 들과 오두막을 볼 수 있다.

 

츠즈졘의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풍경이다. ‘깨끗한 눈 길과 스모그 없는 공기, 이것이 바로 나의 고향이자 설 맞이 그림이다.’ 설에 그녀가 SNS에 남긴 글이다. 


작가 왕안이(王安忆)은 츠즈졘의 작품에 대해 “실력이 대단하다. 자연에서 뛰어나온 듯한 한 작가다.”라며 호평하였고, 류전윈(刘震云)은 “츠즈졘의 작품은 유화의 색체와 삶의 정서, 지역의 특색이 진하게 녹아있다. 그녀의 현대적이면서도 숙련된 필치는 눈밭과 황무지에서 샤오홍(萧红)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실제와 허구의 글쓰기 방식에 있어서는 <어얼구나강의 동쪽>이 오원커 사람들의 존재상황과 백 년 역사의 변천을 그렸다면 신작 <산들의 봉우리>은 현재의 생활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고 얽히고 설킨 역사적 갈등을 함께 그렸다. 허구와 실제 사이에 문학상의 덩잔(灯盏)진을 만든 것이다. 작품 후기에 그녀는 ‘모든 일들이 기억난다.’고 썼다.


“현재의 생활이 역사와 연결되다 보니 소설의 전개가 좀 빨라요. 나이가 들면 말하는 것도 미묘하게 달라지잖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점점 진실되고 소박해 지는 것 같아요.” 츠즈졘이 <산들의 봉우리>에서 초원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은 현지의 삶과 인성에 대한 생각이자 ‘최근 생활이 조금씩 쌓인 결과’이기도 하다.


작품 중의 작은 마을이 산 꼭대기에 위치하며 “인물의 몸에도 우뚝 솟은 곳이 있어” 작품 명을 <산들의 봉우리>라 지었다. 


작품의 많은 등장인물들 중에는 주인공이 없이 군상(群像)으로 그렸다. “보는 관점과 인물의 입장에 따라 각각이 줄거리가 될 수 있어요. 신신(辛欣)의 살인이나 안핑(安平)의 추적처럼요.” 어려운 점은 구조설계로 “이야기의 구조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등장인물은 많지만 소설을 쓸 때 <어얼구나강의 동쪽>처럼 인물관계도 까지 만들지는 않았다. 


“작가는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해야 혈액순환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 츠즈졘의 일관된 지론이다. 츠즈졘은 장편소설 <위만주국(伪满洲国)> 집필을 위해 많은 정치, 역사, 풍속자료를 섭렵했다. 그러나 신작 <산들의 봉우리> 집필 과정에서는 자료의 양보다 마음에 깊이 새기며 정독하는 데 주력했다.

 

“고향에 쌓여 있던 문학자료들, 그 동안 보고 들은 도주병과 영웅의 전설들을 엮어서 작품의 테마로 만들었죠.” 실제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주병 신카이류(辛开溜)나 영웅 안다잉(安大营), 사법경찰 안핑 등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장편소설 쓸 때는 심혈을 기울여요.” 츠즈졘은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 데 보통 3~4년을 들인다. 그녀는 10년 전쯤부터 컴퓨터로 소설을 치기 시작했다. 중, 단편소설에 강한 그녀는 단편소설 <브뤼메르 외양간(雾月牛栏)>과 <깨끗한 물로 먼지를 씻다(清水洗尘)>, 중편소설 <세상의 모든 밤들(世界上所有的夜晚)> 로 작가 중 유일하게 루쉰(鲁迅)문학상을 세 번 수상했다. 


<세상의 모든 밤들>은 츠즈졘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제 인생과 비슷해요.” 머리말에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보지 못하도록 얼굴에 진흙을 두껍게 바르고 싶다.’라고 쓴 것처럼 이 소설은 츠즈졘이 남편의 교통사고 후 1인칭 시점으로 죽음을 서술하고 광산지역 하층민의 글에 주목한 작품이다. 


산문 <따뜻함 속에 사라진 아름다움(温暖中流失的美)>에서 그녀는 “우리 결혼생활이 고작 4년의 시간으로 끝날 줄 알았다면 <위만주국>을 쓰느라 2년을 쓰지 않고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츠즈졘은 “점 같은 거 안봐요.”라며 죽은 남편의 이야기를 꺼렸다. 더우반(豆瓣, www.douban.com)의 한 누리꾼은 츠즈졘의 산문집 <츠즈졘 영상기록(迟子建影记)>에 대해 “정말 얄미울 정로로 (자신의)감정은 한 자도 적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츠즈졘은 이후 모든 장편소설의 후기에 고인이 된 남편 이야기를 적고 있다. <쾌청함은 구름을 뚫고(穿过云层的晴朗)>에서는 “사실 누렁개의 열반 이야기를 쓴 것이다. 키가 컸던 남편이 황(黄)씨 성에 개띠여서 평소에 그를 ‘누렁이’라 불렀다.”라며 자신의 마지막 장편소설에 한자 한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작품활동의 절정기’


세상의 잡음을 일부러 피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츠즈졘의 펜도 연초에 상영되었던 영화 <스물로 돌아가다(重返二十岁)> 같은 작품을 추천하며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세요”라고 응원할 것이다. 그녀는 가끔 TV도 보고 인터넷뉴스도 본다. 그녀가 가장 즐겨보는 것은 축구경기. 관전평까지 썼다.

 

“스릴 있잖아요. 매 경기가 다 달라요. 아무리 재미 없어도 똑 같은 경기가 없고 조작을 해도 다 다르거든요.”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중국 축구는 부패척결 전부터 승부조작이 보였어요. 메이저B 리그까지 봤으니까요.”


츠즈졔은 평소 토요일의 독일 분데스리가와 일요일의 이탈리아 세리에A 경기는 꼭 챙겨본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AC 밀란의 네덜란드 선수 바스타(Basta)로 그때 가장 인기 있는 선수이다. 작년 월드컵 때는 경기 일정표까지 다운받아 밤 새워 경기를 볼 정도로 그녀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축구의 열성 펜이다. 


츠즈졘이 문단에 등단한 것 역시 바로 그 해이다. <북극마을동화(北极村童话)>는 1984년 다싱안령(大兴安岭)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기 전날 저녁에 쓴 작품으로 두 차례 퇴고 만에 1986년 <인민문학(人民文学)>에 발표된다.

 

이 소설은 아이의 시각으로 모허춘(漠河村)의 신기한 북극생활을 추억하는 작품이다. 수 년 후 츠즈졘은 “진실되게 써서 그런지 이후까지도 팬 들이 많이 사랑해 주셔요. 제 개인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고요.”라며 회고한다.


청년작가 츠즈졘은 이듬 해 루쉰문학원 대학원에 입학해 모옌(莫言), 위화(余华), 류전윈(刘震云), 옌거링(严歌苓) 등과 함께 공부한다. 사실 츠즈졘은 1985년 <북방문학(北方文学)>에 <잃어버린(那丢失的…)>과 <잠든 다구치구(沉睡的大固其固)>를 발표하였다. 

 

1990년 루쉰문학원 졸업 후 츠즈졘은 하얼빈으로 돌아가 몇 년 간 <북방문학>의 편집자로 일하며 지역 작가협회 일을 시작하면서 직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오랜 기간 하얼빈과 고향을 옮겨가며 생활했던 츠즈졘은 신작 <산들의 봉우리>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단계적인 작품이라 평가하면서 “제 작품 활동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 사드릴 정도의 원고료는 되요” 츠즈졘이 베이징 인터내셔널호텔 로비에서 농담을 던진다. 웃는 얼굴에 그녀의 마스코트인 보조개 두 개가 파인다.


츠즈졘(迟子建)


1964년 헤이룽장(黑龙江)성 모허(漠河)현 베이지춘(北极村) 출생. 1984년 다싱안령(大兴安岭) 사범학교 졸업 후 시베이(西北)대학 중문과 작가반 과정을 수료하고 1987년 베이징(北京)사범대학과 루쉰(鲁迅)문학원이 공동 운영하는 대학원에서 수학한다. 1990년 졸업 후 현재까지 헤이룽장(黑龙江)성 작가협회에서 일하고 있다. 


1983년 등단 후 현재까지 500여 만 자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나무아래(树下)>, <황혼에 울리는 새벽종(晨钟响彻黄昏)>, <위만주국(伪满洲国)>, <쾌청함은 구름을 뚫고(穿过云层的晴朗)>, <어얼구나강의 동쪽(额尔古纳河右岸)>과 소설집 <북극마을동화(北极村童话)>, <눈의 공원묘지(白雪的墓园)>, <백야로의 여행(向着白夜旅行)> 등이 있다. 

 

루쉰(鲁迅)문학상을 세 차례, 마오둔(茅盾)문학상을 한 차례 수상한 바 있으며, 호주 서스펜스문학상, Solemn 문학상 등 각종 문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해외에서도 출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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