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정쥔(郑钧) II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던 그가 지금은 온화하고 참을성 있어졌다. <중국신문주간(中国新闻周刊)>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리틀애플(小苹果)>도 정말 좋고 <슈퍼걸(超女)>도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진상욱 기자 amote521@gmail.com | 2015-12-07 16:06:27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  정쥔(郑钧)

 

기자/왕쓰징(王思婧)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전에는 대부분 내가 이렇게 멋진 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원래 이렇게 엉망인 인간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2009년 정쥔은 완전히 변했다. 티베트요가를 수행하며 지금의 아내와 교제하기 시작했다. 사실 류윈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쥔은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다. 교제 1주일만에 자신의 상징이던 장발을 잘랐다. 정쥔은 류윈에 대해 “사계절 내내 여름처럼 한 낮에 작열하는 태양으로 슬픔이 당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형용했다. 비관과 분노와 함께 창작의 예민함까지 일부 사라졌다.


2010년 자칭 ‘연기치’ 정쥔은 연예인 류윈과 결혼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자신보다 성미가 사나운 여자는 처음이었다. 알몸으로 집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집안의 물건은 성한 것이 없고 벽에까지 구멍이 뚫렸다. 정쥔은 아내를 수행 삼아 참고 양보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장쥔은 류윈과 애니메이션회사를 세웠다. 회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투자자모임에서 왕궁취안(王功权)을 만났다. 두 사람은 저녁 내내 티베트에 대한 이야기뿐 돈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왕궁취안은 장쥔을 대리고 로잔 고승을 만나러 갔다. 칭화(清华)대 서문의 기숙사식 건물 앞에서 10분간 이야기를 나눈 후 정쥔은 고승들의 속세단절 수련에 들어가 3일만에 나왔다. 영적 멘토를 만난 기분이었다.


장쥔은 변화가 절실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겠더라 고요. 오랫동안 술 마시고 매일 ‘밤 생활’을 하다 보니 몸이 심각하게 축나버렸어요. 오랜 세월 잔병을 달고 살았거든요. 건강도 좋지 않고 마음도 즐겁지 않아 수련으로 제 자신을 치료해야 했어요.”
수행 전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괴롭고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과거의 정쥔은 고삐 풀린 야생마, 또는 제어되지 않는 자동차였다. “이기적이고 책임감도 없고 매일 욕을 입에 달고 살던 그때의 저는 없어요.”


6년간의 티베트요가 수련 후 정줜은 처음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긴장을 푸는 법을 배웠다. “긴장을 풀면 허용할 수 있게 되요.” 그는 차분하고 온유해지고 인내심도 생겼다. “비행기가 8시간 연착되면 전 같으면 비행기를 때려부쉈을 턴데 지금은 책 보면서 기다리죠.” <복숭아 꽃 송이송이 피었네(桃花朵朵开)>를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바 있는 이 록 가수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리틀애플(小苹果)>도 정말 좋고 <슈퍼걸(超女)>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2013년 정쥔은 장쯔이(章子怡), 천이쉰(陈奕迅), 뤄다여우(罗大佑)와 함께 후난(湖南)위성TV 오디션프로그램 <중국 최강 보이스(中国最强音)>의 멘토로 출연했다. 6년전 <콰이러난성>의 경우 2년동안 설득해 출연하고도 결국 현장에서 레오로위(Leorowi)와의 다툼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속히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돈도 많이 주고 주로 뤄다여우가 갔으니까요.” 시즌1은 편집이 어설프고 음향이 좋지 않아 악평이 이어졌고 장쯔이는 무대 뒤에서 울기까지도 했지만 정쥔은 참았다.


장쥔은 매체에 협조할 줄도 안다. 6시간 내내 여러 매체의 인터뷰에도 응하며 목소리가 쉬더라도 테이블에 차분히 앉아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다양한 포즈로의 사진촬영까지 원해 사진작가가 수영장에 뛰어들거나 땅바닥에 안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인 걸요. 갑시다.” 촬영기자는 그의 이런 협조적인 태도가 낯설다.


정쥔은 올해로 48세가 되었다. 팬들은 그의 아내 류윈이 자매들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정쥔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테마파티를 매우 좋아한다. 사진에서는 인도복장을 입은 자매들 사이에 정쥔이 불뚝 둘러 쌓여있다. 최대한 맞추려 노력했다. “연예계에는 친구가 없기 때문에 자매들의 친구들과 친구가 되요.”


다른 사람의 남자친구나 남편과 함께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여자친구가 옷을 갈아입거나 셀카를 찍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기다리기도 한다. “20년전에 그녀를 만났다면 돌아서서 가 버렸을 거에요.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으니까요.”


지금의 우상은 스티브잡스(Steve Jobs)


요즘은 ‘인터넷+’의 상업사업이 더욱 가수 정쥔의 일 같다. ‘합음량(合音量)’은 그의 친구가 투자하고 있는 음악창작 App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곡을 올리거나 공동으로 곡을 쓸 수 있다. ‘작사·작곡자와 편곡자 30%, 가수10%’의 저작권 분배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앨범업계는 이미 죽고 가수업계만 남았어요. 가수들은 TV프로그램과 공연으로 잘 지낼 수 있지만 작사·작곡자와 배후의 편곡자들은 이익을 얻을 기회가 없잖아요. 인터넷혁명이 바로 제가 발명한 합리적인 이익분배방식이죠.” 라고 소개했다.


장줜 역시 어떻게 팀의 조화를 이룰 지 알고 직원 모두가 편하게 지내도록 힘쓰고 있다. 그는 팀원을 비판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으며 직원들의 기대보다 급여도 많이 준다. 더 이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 많은 사람들의 즐거움과 행복이 중요해요.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책감이 들 거에요.” 작년 생일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다. “진짜 기쁘고 즐거운 삶은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삶이에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조금이나 유익과 도움을 주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죠.”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물건을 발명해 생활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고, 가장 위대한 것은 자본이 아닌 창작이에요. 저는 투자를 받을 때 (사업)계획서도 없었어요. 인터넷업계는 정말 좋아요. 이건 분명해요.”리며 인터넷상품의 독창성과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투자자 쑨타오란(孙陶然)은 비행기에서 정쥔의 사업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투자자의 독촉 가운데 정쥔의 ‘허인량’사업이 완성되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회사를 준비할 때보다 더 바쁘다.


정쥔은 자신의 우상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며 “미국의 인터넷사고가 ’나에게 위대한 제품이 있으나 다들 쓰세요’라면, 중국의 인터넷사고는 ‘우리 물건이 싸니 다들 가지세요’에요. 제가 하는 일도 그렇고요.”라고 덧붙였다. 투자자가 상금 100만위안만 대면 전 국민의 ‘인터넷+ 노래’를 공모할 수 있어요. “곡 한 곡 쓰면 100만이나 되려나요?” 정쥔의 말이다.


동시대 록 가수들에 비해 정쥔은 가장 철저히 자신을 바꿔 젊은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이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재무투자에 대한 지식이 있고 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봤으며 일부 사업의 창업자금투자도 해봤다. 술집에 음반회사, 180무(亩)의 농장까지 운영해 봤다. 그가 2010년에 세운 애니메이션회사는 제작비 5,500만달러의 애니메이션영화 <락 도그(Rock Dog)>에 투자했다. ‘CEO’라 인쇄된 명함도 있다.


이 애니메이션영화는 5년에 걸쳐 제작되어 아직도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 “수업료를 톡톡히 냈죠. 지금 제작하면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텐데.” 그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연출을 시도한 끝에 <토이 스토리(Toy Story)>의 감독을 영입했다. 후속작업을 앞두고 또 다시 자금이 문제였다. 투자하기로 한 투자자가 계약체결을 앞두고 철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쥔의 가수신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8년간의 공백기 동안 정쥔은 수 백곡의 곡을 썼지만 좋지 않은 것 같아 그 중 80%를 버리고 <작(作)>과 <풍마(风马)> 두 곡만을 발표했다.


작년 정쥔은 자신의 싱글 <작>의 발표에 맞춰 홍보활동을 했다. 그러나 <풍마>는 올해 ‘허인량’에 직접 발표했다. 칭하이(青海) 위성TV 올해의 대변인으로서 <풍마>로 1,600만위안의 광고도 찍었다.


그러나 이 두 곡은 팬들을 놀라고 기쁘게 하지 못했다. ‘이전 곡들은 하소연이더니 이번 곡들은 설교다’라는 평가도 있다. 아픔은 쉽게 공감할 수 있지만 행복은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정쥔은 남을 도와주고 자신의 가치관을 알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중국판)>에서 말한 것처럼 아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쳐주고 싶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며 용감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들을 대리고 녹음실을 찾아 록을 느끼게 해주고도 싶고, 베이징(北京)에서 자란 아들이 시안(西安)요리를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정쥔 역시 TV에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생활의 재주를 선보이고 요리솜씨로 장인어른이 고개를 젓게 만들지만 엉터리요리가 오히려 리얼리티프로그램의 인기 있는 볼거리이다.


또한, 대부분의 50대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정쥔은 안정된 생활 가운데 자녀와 실랑이 하면서 약해진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방송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거의 없는 정쥔이 이번 토크쇼에서는 멀리 미국에 있는 딸이 “아빠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아빠를 사랑해요” 라고 말하자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항상 엄한 아버지이고 싶다. 아들이 “아버지랑 같이 있기 싫어요.” 라고 말했을 때 정쥔은 아무 표정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견뎌보자”고 말했다 아들의 수 많은 ‘왜’라는 질문에 그는 침묵으로 답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정쥔은 여자조카 팬들이 많이 생겼다. 그들은 정쥔의 여전한 ‘돌직구’를 좋아하며 이를 ‘발동(萌)’이라 한다. 나이 든 팬들은 적응이 안되기도 한다. 정쥔의 예리한 눈도 눈두덩이 살이 쳐지고 꼿꼿하던 머리는 쳐지기 시작하고 입에는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닌 겸손의 말과 미소가 자리잡았다. 더 이상 세상 법에 매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던 록 청년이 아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할 때 정쥔은 집에 ‘허인량’ 홍보포스터를 붙이고 부엌에까지 홍보카드를 붙여 두었다. 감독은 정쥔애게 “광고비가 얼마나 굳었는지 알아?”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유를 묵직한 돈으로 바꿔 상품사회에 들어가자” 21년전 사회를 거부하는 노래를 부르던 장쥔이 이제는 제품사회와 악수하고 회해했다. 관계가 좋아지니 마음도 매우 자유롭다. 정쥔이 손목의 묵주 두 줄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상품사회를 떠나본 적이 없어요.”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보내기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daum
진상욱 기자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