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밍챈차(明前茶)]
퇴근할 때, 교외의 CBD 넓은 거리에는 이미 오가는 사람이 적어졌다. 공기 속의 계수나무 꽃 향기는 성기고 풋풋하게 변하여 더 이상 활짝 피었을 때처럼 향기롭고 풍성하지 않다.
나의 곁에서 걸어가는 한 여인은 모니터를 향해 계속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웃고 난 후, 여러 가지 걱정과 근심을 문의하는가 하면, 또 한숨을 쉬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의 주의력은 스크린에 집중되어 마치 원맨쇼를 하는 것 같았다. 2분 동안 듣고 나서 나는 그녀가 고향에 입양되어 있는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어머니가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상심하여 외할머니가 그를 동영상 앞에 불러오면 아이는 발차기와 싱갱이를 하면서 화합하지 않았다. 마침내 야근에 지친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하는데 흥미를 잃었다.
“나도 하루 빨리 너를 난징(南京)에 데려오고 싶단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는 중한 비음이 있었다.
입양된 경력이 있는 아이의 눈빛은 부모님과 헤어지지 않은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 이전에 핸드폰과 같은 통신수단이 없을 때, 몇 년 동안 외할머니 집에 입양된 아이로서 부모님이 그리워지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우체국의 장거리 전화방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번호에 따라 호출된 후에 접선 복무원의 지령에 따라 한 투명한 정자에 들어가 장거리 전화를 거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이런 행동이 많게 되자 마침내 한 제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서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
“넌 전화도 안 하고 자주 여기에 와서 뭘 하느냐?”
나는 당황해서 일어나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발끝만 바라보았다.
“전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요. 이 전화로 난징에 연결할 수 있나요?”
“베이징에도 연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전화하는 사람들은 보통 친구에게 경조사 통지를 하는데, 너 같은 꼬마가 이곳에 와서 무슨 소란을 피우느냐…….”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섰다. 다만 마음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남자에게 노호할 뿐이다.
얼마 후, 같은 반급의 한 여학생이 나에게 시 중심을 흘러 지나는 운하가 서북 방향에서 흘러 오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곳은 너의 부모가 계신 방향이 아니냐? 나는 그 강에서 길고 긴 예인선을 늘 보는데 혹시 배위의 사람에게 부탁하여 너의 부모에게 말을 전할 수 있을 거다.”
예닐곱 살의 어린이는 그야말로 천진해서 나는 상상 외로 그의 말을 믿었다. 하학 후에 우리 두 가닥의 머리꼬리가 흐트러진 소녀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하나, 하나의 돌다리를 건너,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수증기가 자욱한 운하 제방으로 갔다.
그곳은 인근 주민이 작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채소와 무를 드문드문 심었다. 흙 비린내와 물 비린내가 섞여 우리의 얼굴을 서글프게 감싸고 있었다. 채소밭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우리는 마침내 그 혼탁한 운하를 보았고, 붕—붕 기적을 울리는 화물운반선을 보았다. 석양이 선창 위의 기름기가 번쩍이는 까만 우천을 밝게 비춘 것을 보았다.
뱃머리 위의 여인은 이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연탄난로를 피우고, 막내아이를 등에 업고 허리를 구부려 야채볶음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서 좀 큰 아이 두 명이 갑판 위에 잠자리를 세우고 쫓으며 장난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때때로 그들에게 호통을 쳤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었다. 나는 갑자기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이 가족의 표류를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고독을 동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반평생을 배에서 생활한 이 사람들은 자식들이 모두 부모의 곁에 있다. 그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 갔는데 나에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지? 그날, 나는 배를 따라 아주 멀리멀리 걸어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석양이 저물 때까지 기다렸다. 운하의 밤이슬이 내려왔기 때문에 나의 신발 위에는 제방 위의 진흙이 가득 묻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나는 그 배를 쫓아가는 저녁 무렵이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종래로 헤어진 어린 시절을 겪어 본 적 없으면 오직 행복하고 평범한 영혼을 양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코 샤넬(可可香奈兒) 여사는 그녀의 만년에 자기의 어린 시절 수녀원학교에 다닌 참담한 경력을 “오직 어린 시절에 철저한 외로움을 겪어야만 뮤즈(繆斯, muse)의 차디찬 키스가 너의 이마에 떨어진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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